[금융] DJ 2년차와 노짱 2년차 - 1

작성자
정동희
등록일
2004/08/18
조회수
7599

DJ 2년차와 노짱 2년차, 주소는 달라도 같은 현상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 필자는 김영삼에게 한 표를 던졌고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는 김대중에게 한 표를 던졌었다.

 

한때 대한민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던 양김(兩金) 시대가 여러 가지로 문제점을 남긴 것은 분명하나, 양김(兩金)이 당시 가졌던 카리스마와 흡인력은 당시 대단했다는 점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다. 

 

혹자는 양김(兩金) 이야기를 할 거라면 김종필을 포함하여 삼김(三金)을 논해야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필자는 오늘 바로 JP이야기를 스치는 듯 말미에 한마디 하려고 한다.

 

본론에 앞서 DJ와 YS의 2세에 대해 한마디만 언급하고 가자.

 

YS의 차남 현철씨는 이번 17대 총선에 후보 등록까지 하고 사무실 개소식에 YS가 몸소 거제도까지 행차하였으나, 탄핵 이후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당 대립구조의 태풍 속에 속수무책으로 후보 중도사퇴를 했다.

 

DJ의 2세 김홍일 의원은 금배지를 가슴에 연속 다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DJ의 손때가 묻은 민주당의 사실상 공중분해 속에 이루어져, 차라리 뒤죽박죽이 되었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이렇듯 한때 한국 정치의 양대 카리스마를 상징했던 DJ와 YS 2세들이 1세에 비해 현격하게 정치 흡입력이 떨어지는 게 확인되는 상황에서, 같은 2세인 근혜씨의 대권 행보를 바라보면서, 사뭇 현철·홍일씨보다 상대적으로 파워풀한 근혜 바람의 뒷심이 실제 D-Day가 근접하면서 뒷심이 약해질 가능성이 (어설프지만 진지하게 정치 분석을 시도하는) 필자에게는 왜 자꾸만 우려되는 걸까?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DJ 2년 차는 바로 2000년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를 회고해 보자면...

 

당시 모 증권사에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던 필자는 2000년 1월 다른 증권회사 리서치 동료들과 뒤늦은 망년회 겸 신년회 겸사해서 강남 룸 살롱에 놀러 가기로 큰 결심을 하고 모였었다.

 

왜 새해 1월 달에 망년회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모였을까?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1999년 12월 밀레니엄을 보내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겠답시고 왠놈의 망년회는 맨날 줄줄이 있는데다, 주가는 몇 달 전 대우 사태 발발에도 불구하고 대망의 1,000 포인트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 이거 웬만한 룸 살롱에는 자리가 없었고, 따블요금은 기본이었던 시대였다.

 

우리가 따블까지 내면서 망년회 술을 먹어야겠냐?

차라리 1월이 되어 사람들이 좀 진정되고 나서 좀더 물 좋은 곳에 가서 대우 받으면서 마시자며, 2000년 1월 여의도 촌놈 6명이 강남 룸에 겁 없이 놀러 간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잔머리는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데 채10분이 안 걸렸다.

 

당시 1월 거래소 종합지수는 1,000포인트 선의 부담을 나름대로 느끼는 듯 했으나, 이놈의 코스닥 시장은 밀수된 비아그라를 먹었는지 그야말로 테헤란 전성시기였으니…

 

우리 일행 中 룸을 좀 다녔다고 자랑하는 A씨가 잘 해보자고 룸 웨이터에게 한마디하면서, 우리는 찬밥 신세로 직행했다.

 

동행한 A씨 왈,

“우리들이 큰 맘 먹고 여의도에서 여기 강남까지 오늘 놀러 왔으니, 잘 해줘”

그 말을 들은 웨이터의 눈빛이 순간 바뀐다. 혹시나 로열패밀리인 줄 알았더니 역시나 촌놈패밀리로 격하하여 보는 눈빛으로… ^^;;

 

(그 뒤에 찬밥 신세 된 우리 일행의 이야기는 상상에 맡긴다.)

 

DJ 2년차 3개월이 지나려는 그 때, 코스닥 시장은 버블을 거침없이 뱉어 내고도 지칠 줄 모르며 당시 코스닥 지수 292.55Pt(지금 바뀐 코스닥 지수로는 무려 2,925.5Pt)라는 엄청난 현상이 눈앞에 나타나기 직전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그로부터 정확하게 5년이 지나, 노짱 2년차다.

 

혹자는 우리나라가 80년대 이후 대통령 2년차만 되면 여지없이 주가가 한번씩 비아그라 먹은 힘을 쓰더라고, 과거 역사를 보라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삼형제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큰 형 왈 ;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80년대 이후 대통령 2년차 때 정말 그랬네.

그러면 올해가 노짱 2년 차인데???”

 

작은 형 왈 ; “올해는 마 예전처럼 정확하게 1,000Pt를 보여주지는 않고 지난 4월23일 장중에 찍은 939Pt가 1,000Pt에서 61Pt 모자라지만 그런 맥락인 모양이다”

막내 동생 왈 ; “아직 노짱 2년차가 다 지난 것은 아니잖아. 혹시 아냐 올해 연말이전에 그 신드롬이 뒤늦게 나타날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작은 형의 주장에 동조하시는가, 아니면 막내동생의 주장에 동조하시는가?

 

물론 올해 2004년 12월 납회 일이 끝나고 나면 누구 말이 맞는지 판명 날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제3의 답을 제시하고 싶다.

『대통령 2년차 신드롬은 노짱 2년차인 지금 나타나고 있는데, 주식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충청도 부동산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만약 필자가 생각하는 이러한 가설이 맞다면, 이 답변이 던져줄 수 있는 시사점들은 매우 광범위하게 우리 주변에서 나타날 수 있다.

 

필자가 수년간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1세대 사이버 애널리스트인 모씨는 바로 DJ 2년차에 코스닥의 새롬 기술의 버블 가능성을 감히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었고 그로인해 당시 여기저기서 시달렸었다.

 

물론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그의 주장이 쪽집게였음이 증명이 되지만, 문제는 어제 일도 쉽게 잊어버리는 현대의 대중은 5년 전의 이야기를 들추어 내어 그를 칭찬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다만 지우들에게만 술안주거리로 이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러한 그의 사례를 익히 잘 알고 있고, 이와는 다르나 비슷한 사례를 통해 고생을 한 바 있는 필자 입장에서는, 시사점을 암시하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맺을까 한다.

 

서두에 삼김(三金) 이야기를 하면서 JP 이야기를 말미에 스치듯 하겠다고 예고하였는데,

YS나 DJ 같은 경우 권력의 최종 지향점인 대통령 직을 해먹은 만큼 본인 자신은 정치에 더 이상은 미련을 두지 않는 게 십분 이해가 된다.

 

하지만 JP같은 경우 兩金에 한발 물러서서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일종의 캐스팅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할 여지는 남아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번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본거지였던 충청권에서 대패와 전국구 1번의 낙선이 복합 작용하며 JP 정계 은퇴로 이어졌다.

 

필자는 지난 17대 총선 결과를 보면서 특히 두 가지 사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①    추미애의 지역구 3등 낙선과 그 이후 나타난 추미애에 대한 언론의 바뀐 보도 시각이었고, 이 사실보다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또 다른 하나는 바로

②   JP의 정치적 명맥을 유지하며 정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JP로부터 정치적 헤게모니를 완전히 무장해제하면서까지 수도권이전 카드에 반응한 중부 선거 결과였다.

 

만약 필자의 추정대로 혹시 대통령 2년차 신드롬은 노짱 2년차인 지금 나타나고 있는데, 주식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충청도 부동산을 통해 이미 나타나서 DJ 2년 차와 노짱 2년 차에 주소는 달라도 같은 현상이 재현되고 있었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할까?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바로 ‘과거 역사가 보여 준 교훈을 잊지 말자’ 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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