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조7867억원이라는 순익을 기록한 삼성전자와 3조8260억원을 달성한 포스코 등의 세계적인 기업들은 물론 1조7846억원의 순익을 달성한 현대차가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로 부상하기도 하고 우리금융과 신한지주 등 금융권도 순익이 빠르게 증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수경기와 지표 경기 양극화로 불황인데다 ‘엎친 데 덮친 격’ 으로 금융권을 중심으로 감원 바람이 불고 있어 체감은 썰렁하기만 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주가의 상승은 당연한 듯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아파트 미분양의 증가가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연초부터 심상치 않게 술렁거렸던 주택 시장의 움직임에 불안감을 가지게 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주식 시장은 경기에 선행을 하고 부동산은 후행을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 연관성이 깨졌다고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은 거의 동행을 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단지 움직임의 폭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2001 년부터 이어져 오는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실물 자산의 버블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경고하는 언론이나 기사들을 수없이 접하셨을 겁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의 버블이 발생되던 시기인 1986∼89년의 일본경제신문에서 버블 관련 기사를 다룬 것은 매년 3, 1, 4, 11건에 불과 했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그러다 버블이 터지기 시작을 하던 1990년에 194건으로 급격히 증가를 하였고 1991년에 들어서는 2,546건에 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얼마나 일본인들이 자산의 상승세에 익숙하였고 또 그 불패 신화를 열렬히 신봉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불패 신화 이면의 한 요인이 1983년 10월 이후 2년 이상 5%이었던 재할인율이 1986년 1월부터는 지속적으로 인하되어 이듬해 2월에는 2.5 %로 낮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떨어진 금리만큼 투기자금으로 공급되었다는 것인데요. 일본 정부로서는 당시 이 같은 상황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입니다.
보통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다 아실 겁니다. 반대로 물가가 하락을 하는 상황이라면 금리 정책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겠죠. 금리와 환율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환율은 시이소와 같은 것으로 엔고가 진행됨에 따라 일본산 제품들의 수출 단가는 올라가지만 상대적으로 수입 물가는 하락을 하게 됩니다. 일본 국내적으로는 엔고불황을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어 정책적으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었던 것이죠.
예를 들어 볼까요.
유가가 1 배럴 당 50 불이라 가정을 할 때 달러에 대한 우리 환율이 1,100원이라면 원유를 수입하는데 55,000 원이 듭니다. 그러나 환율이 1,000 원이라면 우리 돈으로 5만원이 듭니다.
이처럼 자국 화폐의 강세는 수입 물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홍콩이나 미국 등지에서 수입해오는 물건 값이 많이 하락을 한 이유이죠.
일본의 버블이 꺼지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1991년에 아무도 예기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철옹성 같던 구소련이 붕괴를 한 것이죠. 덕분에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와 함께 90년대 급속한 팽창의 시기를 겪었으니 일본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었는데요.
최근 이처럼 막강해진 미국이 다시 환율 조정을 통한 칼날을 휘두르고 있어 전반적으로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 고려해보셔야 합니다.
미국이 무역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은 결국 우리처럼 수출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에게는 소득을 감소시키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실물 자산의 상승세가 한동안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까하고 생각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80년 대 후반 미국이 달러 약세를 의도적으로 진행 시킬 때 엔고를 이용해 우리가 급격한 경제 성장을 한 전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가 당시에 차지하던 자리를 중국이 꿰차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 들어가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금리 상승과 90년에 발표된 토지 관련 융자에 대한 총량 규제의 도입에 있습니다.
부동산의 자금 공급이 차단당하자 투기적인 목적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껴 매물을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 내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90년까지 높은 수준에서 안정 상태를 보이던 지가는 91년 중반부터 현저히 하락하여 1년 동안 동경은 15%, 오사카 24%, 쿄토 28% 하락하면서 토지 가격 상승의 신화가 무너졌습니다. 후속 매수가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쏟아진 매물들로 인해 부동산 시장은 마비가 되었고 폭락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일본 내의 특징적인 부분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당연히 민간 수요가 줄어들게 되므로 1990년부터 건설업의 도산이 늘어나기 시작을 해 96년에는 4,065건에 달함으로써 전체 산업 도산의 약 30%를 건설업이 차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의 건설산업의 취업자수는 대폭 증가했습니다. 건설 수요가 줄고 도산도 증가를 하였는데도 취업자 수가 늘었다고 하면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죠.
우리도 최근에 실업 문제 등 고용 불안의 문제가 고조되자 근로시간을 줄여 그 줄인 시간만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자는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로 토목과 관련된 건설직 종사자들이 증가한 것으로 이와 관련된 중소업체가 91년 한해동안 3,600개사 정도 증가했다고 합니다.
기업이란 기본적으로 이익을 내야 존립을 할 수 있는 것이라 무조건 창업을 한다고 해서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니죠. 이처럼 창업이 토목 분야에서 많이 이루어진 데는 무엇인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다음 내용에서 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