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불황에도 끄떡없이 잘사는 비결

작성자
김현정
등록일
2005/02/21
조회수
59266

작년 연말까지 인기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불치병에 걸려 죽고, 서로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자살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 

 

왜 작가들은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불쌍하고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댈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렇게 써야 인기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위안을 찾고 싶은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불행한가요?  뉴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내가 가진 개인적 환경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전체가 불행해 보입니다. 장기화된 불황, 높아지는 실업률과 청년 실업률, 정치적 대립과 세대와 계층간의 골 깊은 갈등, 대책 없이 초고령화되고 있는 사회, 외국자본을 몰아내는 노사갈등, 높아지는 이혼율로 붕괴되는 사회 기초기반.

 

경제, 사회, 정치, 교육 어느 한곳에서도 희망을 볼 수가 없이 숨이 턱턱 막히는 절망들뿐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이 절망의 세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언제는 엄청나게 잘살았던가요?  군사독재와 정경유착.  듣기만해도 끔찍한 것이 우리의 과거사지요. 

하지만, 그 시대를 추억하는 건, 그래도 개인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전체가 완벽하게 잘사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희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수저세트 하나 가지고 산동네 사글세 방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던 모두가 가난했던 시대보다 지금을 우리가 더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이제 서민이라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점점 멀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집마련의 희망, 자식이 출세하는 희망.  우리가 지금 가장 절망하는 이유도 이런 내가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사라진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는 부모가 집도 차도 다 물려주는데, 누구는 뼈빠져라 일을 해도 서울 땅에 집한칸 마련하기가 점점 불가능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교육의 불평등도 점점 심화가 되어, 그저 열심히 하는 것으로 미래를 보장할 수 있었던 믿음은 점점 깨어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점점 늘어만 가는 부자들, 계속 오르는 집값에 떨어지는 금리. 마치 잠 안자는 토끼의 몇 발짝 뒤에서 출발하여 경주를 하는 거북이 같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현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데에서 사람들이 모든 것을 사회와 남 탓으로 돌리기 시작하면서 시작될 공동침몰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불경기가 모든 일에 변명거리 구식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사업이 안 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회사 근처에 오천원짜리 삼치구이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입안 한입 가득 느껴지는 부드러움 대신 두사람이 힘을 합쳐 살을 발라내어야 하는 뻣뻣함에 한마디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다시는 그 집에서 삼치구이를 먹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주인은 손님이 줄어드는 것이 삼치가 맛이 없어져서임을 알아야겠지요.  그리고 더 맛있는 삼치를 올릴 궁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가 나빠도 너무 한다’며 더 싸구려 생선을 손님들 상에 올릴 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지금 실패와 나태를 모두 사회와 정치인, 그리고 부를 독점하고 있는 정치인과 경영인들의 탓으로 돌리며, 자기 눈의 기둥은 못 보면서, 남의 눈의 티끌을 탓하는 누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내가 안되는 이유를 자꾸 외부에서 찾는다면, 자신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에서 한국에게 연장전까지 가서 진 이태리가 심판의 편파판정 때문에 졌다고 난리를 치고, 한 개인인 안정환 선수에게까지 보복하는 모습을 보일 때, 한 말입니다.

 

“잘하는 팀이라면 골을 넣어서 이겼어야 한다. 거울을 들여다 보아라.”  설령 편파판정이 있었더라도, 정말 자신들이 졌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자신들이 잘하는 팀이었다면 그 2시간이 넘는 동안 골을 넣어서 이겼어야겠지요. 편파판정에 대한 시비는 그저 패자, 그것도 치사한 자의 변명일 뿐이었습니다.

 

본인이 정말 실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감원바람, 불경기 등등에 끄떡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실력이 그저 그럴 때, 상대나 환경에 따라서 운명이 좌지 우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하는 일이 100% 일 수는 없습니다. 실력이 충분해도 패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진정 실력자라면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자신이 무엇이 부족해서 패배했는지 분석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세울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일 때, 시대를 탓하고, 남을 탓하고, 자신의 환경을 탓하는 것이겠지요.

지금이 전쟁통도 아니고, IMF 때처럼 온 국가가 가난에 빠지게 된 것도 아니고요. 지금도 잘나가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업하기 안 좋은 나라라고 연일 신문에서 떠들고, 다들 죽는 소리를 해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물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면 더 잘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TV나 신문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약진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머지 않은 옛날인 제 유학시절을 떠올리며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공부할 때, TV를 하나 장만하겠다고 동네 전자상점에 갔었습니다.  저는 상점 입구에 위풍당당하게 전시되어 있는 SONY TV를 사고 싶어, 통장 잔고를 보며 며칠을 망설였습니다.  

혹시 싸게 나온 SONY가 없나 하고 상점 구석으로 들어가면 삼성 TV가 가장 싼 가격표를 붙이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한국제품이 없는 상점도 많았습니다.  ‘애국심을 발휘하여 삼성을 사야 할 것인가? 소니는 못 사도 일제는 사야 할 것인가?’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차를 사고자 한다고 하니, 홍콩 친구가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Never buy Hyundai (현대차를 절대 사지 말라)”. 아마도 그 친구는 현대가 한국 차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알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못되거나, 간이 큰 친구는 아니거든요.

 

하지만 5년도 안 되는 사이에 싸구려 삼성은 TV 부문에서 세계 최고가 되었고, 가장 좋은자리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소니보다도 비싼 가격에 팔리는 서민들의 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삼성은 모든 ‘꿈’ 이상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삼성이 소니보다 더 잘나가리라고, 아마 삼성의 경영진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삼성에서 교육을 담당할 때 ‘10년 안에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을 수도 있다’ 라는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 삼성은 소니와 비교가 안되는 매출을 올리고 세계 순익 9위에 올랐습니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911테러로 인한 불경기, 극심한 자국 중심주의와 짧지만 세계적인 불황의 강을 성공적으로 건너왔습니다. 

 

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흑인이나 멕시칸들이나 타는 싸구려, 교포와 유학생들도 외면하는 3류가 더 이상 아니지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현대가 10년 AS를 약속하는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내가 해석을 제대로 한 것인가 기가 막혔고, 솔직히 한편으로는  ‘저렇게 까지 해서 차를 팔아야 하나? 저런다고 현대가 혼다되나?(미국사람들이 ‘현대’를 잘 발음 못해서, ‘혼다’와 비슷하게 발음을 합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었으며, 그 자신감은 매출로 이어지고, 이제는 자국 브랜드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요즘은 머지않아 현대가 혼다보다 잘나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우리도 어려움을 이기고 자신있게 도전하고, 약진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꿈꾸는 것 이상의 현실에서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절대로 이런 상태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상태에서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생각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지요?

 어려운 시절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약진해야겠습니다.

불황이라서 못사는 게 아니라, 불황이라도 잘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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