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전쯤 터팬이 오픈했던 동호회 '착부동'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면서 정모(정기모임)도 몇 차례 가졌었다. 아울러 지난 주 토요일. 부산에서 있었던 4차 정모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IMF 환란 이후에 열병처럼 번진 재테크바이러스가 전국적이었음에 반해, 재테크 강연회, 동호회, 투자정보와 부동산투자분석 정보는 온통 서울 중심으로만 한정되었던 사실에 터팬은 늘 안타까웠다.
非수도권 재테커들도 엄연히 똑같이 부자가 되고 싶을 것이고, 영양가 있는 정보에 대한 갈망 또한 그동안 소외된 만큼과 정비례 할진대, 시삽인 터팬이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같잖으나마 아는 만큼이라도 조언해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 일었다.
다행히도 착부동 운영진인 재테크전문가 L군(멋진상어)도 터팬의 동행제의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KTX개통 이후 터팬이 사는 동네인 행신동 차량기지 근처에서 그 냄새만 맡았다가 이번 참에 기필코 타보고자 아침 6시에 출발하는 고속열차를 예매했다.
상큼한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31,000원의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팅을 하고서, 이윽고 8호 열차에 올라타니 청록색의 좌석이 4열종대로 늘어져 있다. 냉큼 자리잡고나서 도착시간인 8시 40분까지라도 잠을 청하려고 좌석을 뒤로 자빠뜨리려고 했으나, 조금 뒤로 움찔하더니 더 이상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애걔?? 이게 모야? 이거 고장 난 거 아녀?”
알고 보니 원래 그렇단다. 앞뒤 좌석간격도 좁아서 다리 뻗을 공간조차 없는 꼬라지를 보니, 워낙 빨리 달려줄테니까 잠자지 말고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버텨보라는 철도당국의 자만심의 산출물이 아닌가 싶다.
“에라이~ 좌석 안자빠진다고 해서 못 채운 새벽잠까지 포기할 터팬이 아니쥐~”
앞뒤로 안 자빠지면 좌우라도 자빠지련다~ 싶어서 창가로 머리를 기댔다. 이거 원~ 기린모가지가 아닌 담에야 창문까지는 택도없이 멀 뿐이다. 승객이 편안히 주무시는 것이 그리도 싫더란 말이냐? 하는 수없이 오른쪽에 앉은 L군의 어깨를 빌렸다.
누가 보나따나 영~그 모습이 엽기적일 수도 있었건만, 애초부터 남들 시선 따위에 아랑곳 할 터팬은 아니다.
즈덜 눈치 보느라 잠 못자서 행여나 병풍 뒤에서 향냄새라도 맡게 되면 땡전 한푼 보태줄 것도 아니잖은가 말이다. 남들보다 1.5배는 더 크고 무거웠을 터팬의 연탄을 묵묵히 견뎌준 L군의 어깨가 무척 고맙다. ^^;;
소음이 거의 없다는 KTX의 자랑과는 달리 터널을 지나는 순간순간마다 귀가 멍~해졌다. 왠 놈의 터널은 또 그리도 많던지… 멀쩡한 산의 구멍을 뚫어내느라 사람도 자연도 욕봤겠다.
저만치 반대편에 배치된 역방향 좌석은 끝끝내 한 명도 앉질 않는다. 저럴 줄 알았으면 그 자리로 옮겨서 다리 쭉뻗고 잘 것을... 쩝.
가끔 오가는 PX수레에는 별로 먹을만한 메뉴가 없이 가히 썰렁한 수준이다. 왜 국민간식인 삶은 계란과 귤, 새우깡은 안 파는지 모르겠다. 운송매출 외에 그 수입도 꽤 짭짤할텐데…
KTX측에 제안한다. 고객 서비스도 그렇고 부수입을 위해서라도 꼭 예전의 푸짐하던 홍익회의 메뉴를 제공해 주길 바란다.
터팬은 안 가본 장소에 가거나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되면 꼭 흔적을 남기곤 한다. 마치 짐승들이 배설물로써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말이다. ^^;;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시리 승차하고 하차할 때까지 어떤 신호도 오질 않아서 아쉬움만 남긴 채 하차를 하게 되었다. 갖고 갔던 가그린이라도 둘러 마실걸…… 후회된다.
이래저래 기대와는 달리 만족스럽지 않은 첫 KTX체험 이었다.
딱 한가지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따금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왔다리갔다리 하던 상큼한 스타일의 안내양(?) 뿐!! ^^;;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터팬에게 눈길을 주었더라면 KTX예찬론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흐~~
대전, 동대구역에 정차하고서 예정대로 제시간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어찌된 것이 서울역보다 부산역사가 더욱 삐까뻔쩍하다. 서울역은 각성하라.
부산역사 광장 앞에 단정하게 꾸며 진 등나무 벤치에서 냉녹차를 마시면서 한숨 돌리고 나서 이번 정모를 위해 애써주신 부산지역 본부장님(?)을 만나서 함께 아침식사도 하고 광안리해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완공된 지 얼마 안된 듯한 광안대교의 모습이 자못 장중하다.
정모시간인 4시가 되자 서울의 강남역에 비견된다는 서면역 근처의 아미쿠스(=친구)라는 독일식 맥주집에서 15명이 모였다.
그 동안 목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이 동호회의 게시판에서만 친숙했던 회원들을 직접 만나게 되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반가움을 이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부부동반으로 오신 분까지 계셔서 기쁨은 더욱 컸다.
그 분들과 3시간 남짓 동안 정담을 나누며, 또 한편으로는 재테크와 관련하여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점 몇 가지가 있었는데…
1.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도대체 재테크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더라는 것이다. 재테크강연회는 차치하고서라도 서울에선 흔하디 흔한 백화점 소규모 강좌조차도 체험할 기회가 없더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텍스트 정보와 신문기사가 전부일 뿐, 동호회조차 서울에서만 모임이 있어서 그 소외감이 자못 크더라는 것이다.
2. 재테크의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부동산에 대한 관심비중이 절대적인데, 인터넷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각종 부동산정보가 너무 수도권에 편중되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는 분이 계셨다.
3. 이따금 지방의 부동산에 대해 언급하는 전문가의 글을 보면 가소롭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디가 개발되고 어느 신축아파트 예정지가 역세권과 가까워서 유망하다느니 따위의 분석정보는 누구나 아는데, 그 따위를 분석정보랍시고 내어놓은 전문가의 수준이 한심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 점은 터팬이 평소에 하고팠던 말이다.
4. ‘착한 부자’ 를 모토로 하는 동호회 멤버답게 돈과 삶에 대한 건전한 시각도 인상 깊었다. 돈을 위한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돈을 모으고자 하는 회원들의 가치관이 뚜렷해 보여서 뿌듯함을 느꼈다.
5. 놀랍게도 소외되었던 정보접근성과는 반비례하여 재테크 감각들이 무척 뛰어났다는 점이다. 게다가 재테크포탈사이트 모네타(www.moneta.co.kr)에서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노라고 평가해 주신 분이 몇 분 계셔서 모네타의 녹봉을 받아먹는 머슴의 입장에서도 흐뭇한 미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래저래 이번 부산정모여행(?)은 터팬의 인생에 소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동행한 L군도 마찬가지로 보람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확신까지 갖게 된다.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열정을 바친다는 것, 그리고 사람끼리 더불어서 정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기에 20만원 남짓의 비용과 새벽부터 밤늦은 일정까지도 기꺼이 치뤄 내게끔 하는가 보다.
옥의티!! 친절한 부산의 택시기사님과는 너무도 비교되던… 돌아오는 길에서 서울역에서 터팬의 승차를 거부하던 그 기사넘만 빼놓으면 8월28일은 터팬의 2004년에서 하이라이트가 되기에 충분했다.
말 나온 김에 뒷담화 좀 더 하자면… 그 기사넘은 그래 놓고서도 경기가 안 좋아서 택시 못해먹겠다고 맨날 승객에게 투덜댈 것이 분명하다. 그는 대응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택시운전 아니라 그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하긴 글러먹었다. -_ㅡ;;;
아마 터팬이 기혼이었다면 가족을 남겨두고 소중한 휴일에 부산까지 원정 가서 정모를 하기는 쉽지 않겠다 싶다.
무엇이든지 타이밍이 있다.
-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 전에 하고픈 것을 실컷 못해봤다면서 미련을 못 떨치는 사람이 있고,
- 아프고 나서야 멀쩡할 때 진작에 건강관리를 못했다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보았고,
- 직장을 잃고 나서야 미리미리 자기계발에 소홀히 했음을 탓하거나, 이럴 때 再起를 위한 공작금을 준비하지 안았음을 두고두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도 보았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도 무엇인가를 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꽤 계실 듯 하다. 하지만 말이다. 그 적절한 타이밍이란 것이 현명한 사람에게는 항상 따라붙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양속담에서 그러잖은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 출발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라고 말이다.
어찌 보면 터팬 또한 현재의 경제적인 꼬락서니를 보았을 때 한심할 정도로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후회만 하진 않으련다. 아직은 마음껏 보고 듣고 꼼지락거릴수 있는 늙지않은 육신이 있고, 무엇을 하던지 적어도 말로나마 응원해주는 벗들이 있으며, 밤이되면 편안히 누워 잠들 수 있는 아늑한 셋방은 있잖은가 말이다.
박희섭 님의 인도 기행문에서 본 글귀가 문득 떠오른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데서 생겨난 불만은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