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빚지고는 못 산다

작성자
강준현
등록일
2010/10/04
조회수
13130

 살아가면서 ‘빚지고는 못 산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인데, 먼저 재무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빚은 재무적으로 부채라고 표현하고 여기에는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재무적인 약자(弱者)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이에 대한 개념정립이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심재성씨가 2010년 1월 1일, 대한은행에서 연 4%의 1년짜리 정기예금에 1,000만원을 가입했다고 치겠습니다. 이 때 이자는 1년 후에 40만원이 발생하고, 심재성씨는 1년 후에 1,040만원에서 세금을 뺀 금액만큼 받게 될텐데, 이는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금융거래이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과연 누가 누구에게 돈을 빌려준 것일까요? 은행이 심재성씨에게? 심재성씨가 은행에게? 정답은 심재성씨가 대한은행에게 1,000만원을 빌려준 것입니다.

 

 우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는 생각은 하지만 내가 은행한테 돈을 빌려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나는 돈이 별로 없고, 은행은 돈이 엄청나게 많으니까요. 돈이 엄청 많은 은행이 나한테 돈을 빌리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느끼는 거지요. 하지만 필자는 여러분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으로 이해하길 바랍니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자를 받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빌려줬으니까 이자를 받는 것이지요. 이렇게 고객이 주인(主人)의 입장이 되는 것이 보다 주체적이고,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방식입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예대마진(margin, 예금이자율과 대출이자율의 차이)이 주수입원입니다. 즉, 고객이 빌려준 돈을 은행이 더 높은 이자율로 다른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그 이자를 받아서 고객에게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고, 그 나머지가 은행의 수익이 됩니다. 즉,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서 높은 이자율로 대출해 주는 이른바 ‘돈놀이’를 하는 것이죠. 그러니 막말로 고객이 은행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은행은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은행에 예금, 적금의 형식으로 돈을 빌려주는 여러분들이 은행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을 예로 들었는데, 은행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자’라는 것을 지급하는 모든 금융기관과 회사, 심지어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A라는 회사의 채권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A라는 회사에 돈을 빌려주고 그 증서로 채권을 받은 것이고, A회사는 그 돈으로 사업을 통해 더 큰 수익을 내서 채권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고, 나머지가 회사의 수익이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국채나 공사채를 가지고 있다면 국가나 공사에 돈을 빌려준 것이고, 국가나 공사는 그 돈으로 공적인 사업을 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여러분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입니다. 주저리주저리 길게 썼지만 핵심은 간단합니다. 돈을 빌려주는 여러분들이 있기에 금융기관과 회사,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부심과 주인의식을 가지기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서두에 빚지고는 못 산다라는 말을 언급했는데, 빚이라는 것이 꼭 돈에만 해당되는 개념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내가 이득을 얻었다면 그것은 마음의 빚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들이 우리가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 주신 것도 마음의 빚이요, 어려운 부탁을 친구가 흔쾌히 들어주었다면 그것도 마음의 빚이요, 무심코 들어간 어느 식당의 고들빼기김치가 어렸을 때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 주었다면 그것도 마음의 빚이요, 라디오에서 지금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노래가 흘러 나와서 감동을 받았다면 그것도 마음의 빚이요, 차선변경을 못해서 낑낑대고 있는데 누군가가 양보해 주어서 고마움을 느꼈다면 그것도 마음의 빚이요, 아프리카의 굶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을 느꼈다면 그것도 마음의 빚입니다. 왜냐면 감동, 고마움, 측은지심 등의 감정은 영혼을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가 의도하거나 노력한 바 없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빚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마음의 빚을 느꼈는지 아닌지를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고, 이 빚을 갚으라고 법으로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오직 나만이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일상 속에 수도 없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느낄 수 있느냐, 만약 느꼈다면 그 빚을 갚으려는 마음이 있느냐겠지요. 마음의 빚을 느끼지 못하거나, 느끼지만 갚을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이기적이거나 비양심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마음의 빚은 물질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은 부모님께 효도하면 되고, 친구에 대한 고마움은 나도 그런 친구가 되어주면 됩니다. 고들빼기김치가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고 음식값을 두 배로 낼 필요는 없겠지요. 그저 맛있게, 고맙게 잘 먹었다고 표현하면 됩니다. 라디오에서 감동적인 노래를 들었다면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고맙다는 댓글 한번 달아주면 되고, 차선 양보를 받았다면 나도 급한 누군가에게 차선을 양보해 주면 됩니다. 굶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ARS 전화 한 통 합시다. 그거 큰 돈 안 듭니다. 영혼이 정화되고 성숙된 것에 비하면 2,000원은 결코 큰 돈이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 방송인 김구라씨가 어떤 프로그램에서 본인의 인생철학은 Give and Take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Give and Take를 ‘돈’에만 국한시킨다면 쩨쩨하거나 계산적이라는 느낌이 들겠지만, 그 의미를 확장해서 마음으로 주고 받는 모든 것까지 포함한다면 합리적이고 인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는 사람은 부자가 되기도 어렵고, 부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부자는 국가와 사회, 주변 사람에게 아무 짝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입니다. 아니, 쓸모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가진 자의 횡포를 부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양심도 철학도 없는 부자는 마치 장전된 권총을 손에 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주변사람들을 위협하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 때문이고, 스스로는 그것을 재미있어 할 겁니다.

 

아마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부자자격제’라는 게 도입이 되면 좋겠다는 망상을 해 봅니다. 분배와 조화를 이해하고, 양심과 철학이 있는 사람들만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자격 말입니다. 모네타의 회원 여러분들도 모두 부자가 되고 싶으시죠? 기왕에 부자가 되실 거면 ‘자격 있는’ 부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Habracadabrah~!!!

 

빚지고는 못 삽니다. 재무적인 빚이든, 마음의 빚이든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이자까지 쳐서 말이죠. 재무적인 빚은 갚는 것을 법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빚지고는 못 살고, 마음의 빚은 갚는 것을 양심이 강제하기 때문에 빚지고는 못사는 모양입니다. 넓은 의미로, 빚을 안 지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빚을 지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면, 빚을 갚는 데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개인이 더욱 성숙해지는 길이고 또한 사회가 보다 성숙해지는 길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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