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과거를 바꾸는 미래

작성자
김현정
등록일
2006/05/29
조회수
10611

과거의 재구성

 

요즘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난의 추억’을 들먹이는 득표 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답니다. 모두들 자신의 배고프고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 세대에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 아버지에게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살았고, 지금도 만날 때 마다 듣습니다. 사위 앞에서 가난했던 것이 뭐가 자랑이라고 저러실까 싶기도 합니다.

 

반면 스물 여덟의 김지성씨는 자신은 지금 수도권에 있는 공대를 다니고 있다고 소개를 하고, 자기가 지금 이런 처지에 있는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대치동에서 초,중, 고등학교를 다 나오고, 서울 의대를 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 2때부터 성적이 뚝뚝 떨어지고, 아무리 고액 과외를 하고 대치동 최고의 선생들로부터 배워도 회복이 되지 않아서 결국은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수를 하고 삼수를 해서 온 것이 지금의 학교. 학교를 다니면서도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학점도 바닥이고, 전공도 마음에 안 들어서 복수 전공을 신청해 놓고도 제대로 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신나게 놀러 다닌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졸업은 해야겠기에 작년부터 정신차리고 학점에 신경 쓰고 있지만,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너무나 스스로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모두를 저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지 자꾸 부정을 하더군요. 지금 학교 다니는 사람들은 무시하면서 어울리지 않고, 어린 시절 친구들은 자존심 상해서 만나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살다 보면 잘 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고, 잘살 때도 있고, 가난할 때도 있습니다. 힘든 일, 억울한 일 다 겪고 삽니다. 성공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과거가 어땠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리고 현재와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알고 실천하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에 어느 한 순간 공부 잘한 적 없던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실력이라는 것은 그것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 그리고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을 되돌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김지성씨는 성적이 떨어지자 겁이 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혹은 그의 부모는 돈에 기대기 시작했습니다. 거액의 과외를 했는데도 성적은 안 올라갔습니다. 당연합니다. 족집게 과외가 시험문제 한두 개는 더 맞게 해 줄지 모르지만, 실력을 올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억울해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족집게 과외선생을 찾는 마음으로 저를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거 할 줄도 모르고, 세상에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묻고 몇 가지 옵션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들처럼 최고엘리트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예전 친구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는 걸 정말로 희망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법고시나 변리사 시험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아주 황당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몇가지 옵션이 더 있지만, 그것들도 다 사법고시 보는것 만큼 힘이 든 것 이라구요. 대기업에 들어가기 힘들겠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고, 들어가서도 어느 그룹에서든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3-4년 경력을 쌓아서 미국 상위 20위권 대학에 MBA 를 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변리사 시험을 보는 것보다, 의대를 다시 들어가는 것보다 쉽거나 돈이 덜 들지 않습니다. 다만 적성에 맞았을 경우 즐겁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6-7년을 투자하고 나면 지금 한이 맺힌 그 옛날은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마치 지방선거 후보자들처럼 말이죠. 사법고시 봐서 합격하면, 예전 대입 실패해서 방황하던 시기가 그를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고, 그의 승리를 진정한 인간승리로 칭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강금실, 오세훈, 이계안, 진대제 후보.. 등등.. 쟁쟁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난을 내세우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알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겠다라는 면에서 어필도 하겠지만,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부잣집이나 머리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만 하고, 그저 열심히 해서 어려운 시험 합격해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을 거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편견을 뒤집는 역할도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 그렇게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의미도 되겠죠. 산전수전 공중전에 수중 전까지 겪고 이 자리에 올라왔다는 겁니다. 특히 나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여성, 특히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에게는 이는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할 것입니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어려운 과거나 형편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대중은 “너 없는 집 출신이구나” 하는 무시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훌륭하게 되었구나” 하는 존경의 눈길을 보냅니다. 왜냐면 이제 우리는 신분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고, 가난이나 열악한 환경은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한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되기 때문입니다. 김지성 씨가 자신의 학교에 대해서 그렇게 저주에 가까운 무시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깍아내리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학교 정도의 레벨 대학 출신 중에는 유학 안 다녀오고도 지금 연봉만 수십억을 받는 삼성전자 사장도 있습니다. 그가 성공을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출신학교가 후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학교에 좋은 학점 가지고 있으면 잘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건 행운이 여신이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점점 가능성을 높여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런 노력을 과거에 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몇 곱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미래는 지금과 결코 달라질 것이 없을 겁니다.

 

과거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좋건 싫건 그것은 내가 한 결정과 선택의 결과입니다. 김지성 씨가 정말 학벌이 그렇게 문제였다면, 사수, 오수 계속 해서 서울대를 가거나, 지방대 의대라도 갔어야겠지요. 아니면 유학을 갔거나 말이죠. 실제로 제 친구 중에는 군대 다녀와서 7수 해서 한의대를 나와서 작년에 개원을 한 녀석도 있습니다. 김지성씨 자신은 할만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포기’를 한 것입니다. 적당히 할 거면 시작을 말던가, 하고 나서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겠죠.

 

실력이나 노력도 그렇습니다. 본인은 열심히 했다고 믿지만, 사실 비 능률적으로 했거나, 다른 사람보다 사실은 ‘열심히’ 의 기준이 현격히 낮을 수도 있습니다. 독서실에 매일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엇다고 하지만,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게 아니죠. 독서실에서도 이어폰 꼽고 음악 들으면서, 책 펴놓고 딴생각 하면서 공부한답시고 커피 계속 마시고, 카페인 때문에 밤에는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있고,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서 고액 과외를 한다면 성적이 오르겠습니까? 이는 직장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한 두시간을 해도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야근을 계속해도 성과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최대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자세와 방법을 취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도 진정한 능력이고 실력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능력과 실력이 굉장히 출중한 사람,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 성공하는 곳이 아닙니다. 비록 능력이나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한 두 가지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게 필요하겠죠. 그리고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렇지 않은 것을 할 때보다 더 잘 하게 되고 즐거울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 현재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고, 자신의 발목을 잡아끄는 과거가 있다면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팔자려니 받아들이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거나, 아니면 미래에 훨씬 더 잘 되어서 입신양명하는 날 어두운 과거를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들러리로 이용하는 것이죠. 과거와 현재의 열악한 환경은 1000번을 고쳐 생각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에 취하는 어떤 액션은 미래는 바꿀 수가 있고, 그 미래가 과거와 환경을 재구성해줍니다.

 

저희 아버지가 매일 가난하던 이야기를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현재 아버지가 이루신 것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무슨 자랑하듯 못살던 이야기를 하시지는 않으시겠죠. 한편으로는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하는 변명일 수도 있겠구요.

 

어려운 시절은 어려운 시절로 접고, 미래에 어려운 시절을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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