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뿔났다 – 1부

작성자
강준현
등록일
2013/09/11
조회수
6763

 프랑스의 국민배우로 불리는 제라르 드빠르디유(Gerard Depardieu)가 단단히 뿔이 났습니다. 무엇에 대해서일까요? 본인의 조국에 대해서입니다. 어찌나 뿔이 났는지 국적을 바꿔버렸지요. 2013년 1월 3일, 유럽언론들은 일제히 드빠르디유가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러시아 국적을 얻었다고 보도했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그를 사저로 초대해서 여권(국적)을 직접 전달하는 이벤트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국적까지 바꿨냐고요? 바로 세금 때문입니다. 모(母)국의 세금이 부담스러워 세금이 적은 나라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른바 ‘세금망명’을 한 것입니다. 프랑스는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드빠르디유가 실제로 프랑스 국적을 완전히 포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적변경을 고민할 정도로 세금이 버거운 건 사실인 모양입니다. 이 양반만 그런 게 아닙니다. 프랑스 최고의 갑부이자 세계 4위의 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루이비통 회장도 벨기에로의 귀화를 추진하고 있고, 그 밖에도 상당수의 프랑스 부유층들이 국적이나 재산을 외국으로 옮기고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프랑스는 세금을 얼마나 많이 내야 하길래 이런 세금망명 행렬이 줄을 잇고 있나 궁금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소식이 프랑스 정부의 개인소득세 정책입니다. 2012년 말에 프랑스 정부는 연간 100만 유로(약 14억 원)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75%의 소득세율을 신설해서 2013년부터 2년간 적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음… 75%라… 뭐? 75%라고!!!???

 

 

 프랑스 정부의 발표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일단 과하다, 적정하다, 부족하다, 셋 중 하나의 생각이 들 테고(아마 대부분 ‘과하다’일 것 같지만), 세금 많이 내도 좋으니까 저 정도 벌어봤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겠고, 20억 벌면 75%니까 15억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건지 궁금한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데 사실 프랑스 정부의 저 발표는 실생활과 밀접한 내용이 아닙니다. 75%라는 수치만 얼핏 봐서는 프랑스 국민들이 우리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낸다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각인될 수 있지만 실제로 저 구간에 해당되는 사람은 6천만 프랑스 국민 중에서 1,50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언급한 영화배우나 재벌회장님 등 몇몇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세율인 거죠. 게다가 14억 원 미만의 소득에 대해서는 5개의 구간으로 나눠서 0~45%의 누진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20억 벌어서 세금 15억 내는 그런 구조도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75% 소득세율은 프랑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아서 현재로서는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프랑스 국민들이 우리보다 세금을 엄청나게 많이 내는 건 아니라고 봐야겠지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위헌판결을 받은 이유가 75%라는 세율이 너무 높아서가 아니라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 때문이라는 겁니다. 프랑스는 우리와 달리 기본적으로 개인별 과세가 아닌 가구별 과세를 하고 있는데, 75% 세율은 개인별 과세 방식이기 때문에 헌재에서는 과세형평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거죠. 부부가 각자 10억씩 버는 집과 부부 중 한 사람이 20억을 버는 집의 세금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으면 평등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몇 가지 뉴스를 소개했는데, 세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세금이란 무엇인가요? 개개인의 세금에 대한 개념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사전적 의미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금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주권과 생명과 재산과 영토를 보호하고 국민들이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안보, 행정, 법률, 치안, 복지, 교통 등에 대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그것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필자는 여기에서 첫 번째 이견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대부분은 국가의 공공서비스를 인정할 테지만 간혹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라는 태도의 소유자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중에 TV 시청료, 국민연금 납부를 거부하고 섬에 들어가 사는 인물이 나오던데 이 사람이 한 말이 걸작입니다. ‘그럼 나 오늘부터 국민 안 할래!’ 물론 시청료와 국민연금은 세금이 아니고, 이 영화가 세금을 주 소재로 다룬 영화도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의 세금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이 사람처럼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비록 소수일망정 분명히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국가가 그들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을까요? 함부로 국민임을 포기해도 되는 걸까요?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국가의 공공서비스는 공기 중의 산소로, 공공서비스에 대한 개인의 느낌은 산소측정센서(sensor)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공공서비스는 산소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고, 개인이 갖고 있는 센서의 성능에 따라 어떤 이는 산소의 정확한 농도까지 측정할 수 있는 반면, 또 어떤 이는 산소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측정이 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소가 측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누구도 산소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주장을 한다면 그는 크레타 섬의 거짓말쟁이가 되겠지요. 산소가 없다면 산소가 없다고 주장할 그 누구도 이미 죽고 없을 테니 말입니다. 따라서 산소가 측정되지 않는다면 산소가 없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본인의 센서가 무딘 건 아닌지 살펴보는 게 맞습니다. 그게 논리적이죠.

 

 

앞으로 돌아가서, 여러분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다른 표현으로, 산소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동의한다면 산소를 사용하는 비용(세금)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정할까요? 필자는 여기에서 두 번째 이견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누군가는 그 비용이 비싸다고 느끼고, 다른 누군가는 싸다고 느낄 테니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 그 비용이 싸다, 비싸다에 대한 판단은 논리적인 근거보다는 감정적인 느낌이 훨씬 많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뿔이 난 사연을 소개했는데 얼핏 생각하면 세금이 얼마나 부담되었길래 국적을 버리기까지 했을까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사건은 감정싸움의 결과입니다. 프랑스가 부자들에 대한 세율을 높이려고 하자 드빠르디유가 “그래? 그럼 난 프랑스 국민 안 할래!!!” 이렇게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주변국들에 비해서 세율이 높은 편이었고 프랑스의 부자들은 그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항상 해왔습니다. 이 배우도 그런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벨기에에 주택을 구입했는데 어쩌다가 이 사실이 밝혀지자 프랑스의 총리가 공개적으로 이 배우에게 ‘한심하다’라는 표현을 한 것이 발단이 되었죠. 이 말을 들은 드빠르디유가 발끈해서 역시 공개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납세의무를 게을리한 적이 없다. 나는 45년간 약 2,000억 원의 세금을 냈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당신들(정부)이 성공과 창의력, 재능 등 다른 이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러시아로 망명을 한 것입니다.

 

 

편지 내용에서 필자는 세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째, 드빠르디유가 돈을 참 많이 벌었고 세금도 참 많이 냈구나. 둘째, 세금 많이 내는 걸 벌이라고 느끼는구나. 셋째, 세금 많이 낸 걸로 대우받고 싶었는데 대우를 못 받았구나. 쉽게 말해서 ‘세금도 얼마 내지 않은 총리가 세금을 이렇게 많이 낸 나를 감히 비난해?’라는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필자는 이 사건을 표면적으로는 ‘세금부담에 따른 세금망명’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대우받지 못한 국민의 분노표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드빠르디유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사건이 세금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느낌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있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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