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와 함께 쫓겨나온 터팬은 남원역사 밖의 가로등 아래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곳은 어째서 벤치가 한 개도 없었는지, 새벽잠 마다하고 동네 마실 나오신 어르신들의 눈에는 아마도 새로 스카웃 된 New Face 거지 인줄 아셨을게다. ^^;;
상상해 보시라.
밤새 설레는 여행을 시작하며 수다를 떠느라 잠을 못 자서 머리카락은 떡이되고 헝클어진 채로 눈은 퀭~해져 있지,
5공고스톱 벌타를 수 십대씩 얻어맞아서 마빡은 벌겋게 부어있었지,
거지들한테 끽소리 못하고 쫓겨나온 분한 마음에 서로 씩씩거리면서 꿍얼거리고 있었으니,
어느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이 차세대의 남원 땅 걸인業界를 짊어지고 나아갈 꿈나무로 보였을 것이다.
돌배 : 터팬아. 니가 아무리 범생이라구 우겨도 지금 꼬락서니는 아까 그 자식들 꼬붕처럼 보인다.야. ^^
터팬 : 얌마. 너도 만만치 않어.
돌배 : 아싸라비야~♬~♪. 뻐스 온다.
BUS : 빠라바라 바라밤 !! (이 소리가 아니었나? ^^;; )
우리 듀엣은 지리산 입구인 경남 함양 백무동에 도착했고.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드디어 입구에 들어섰다.
그런데 그만 !!
입구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등산안내도를 보니, 정상인 천왕봉을 지나 연화봉 ? 세석산장 ? 토끼봉 - 노고단 ? 구례화엄사 종주코스가 60킬로미터에 육박했던 것이다.
때마침 전문선수처럼 보이던 등산객에게 물었다.
터팬 : 아자씨~ 여기서 천왕봉 지나서 화엄사 코스가 총 몇 시간이나 걸릴까요?
선수 : 하이고~ 겨우 몇 시간이라꼬? 우야믄 좋노~ 참말로 이 사람들아~ 그 운동화하꼬 장비로는 택도 엄쓸끼라. 속차리고 퍼뜩 집으로나 가소 마.
(지난 회부터 임자 잘못만나 뜬금없이 고생하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들만 무지 불쌍하다. -_ㅡ;;;; )
우린 그 분의 충고에 한참 갈등하다가 젊은 패기로 강행군 하기로 했다.
호연지기 좀 길러보겠다며 굳은 각오를 하고 작당한 우리가 이슬 잠과 험한 길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대한의 건아라 자부하리오.
프로스펙스 운동화의 성능을 한번 믿어보자면서 의연한 발걸음을 떼었다.
지리산을 즐겨 찾으시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백무동에서 천왕봉까지는 중간의 계곡이 험하긴 해도 요상맞게 생긴 나무들과 기화요초 등 눈을 즐겁게 할만한 볼꺼리도 많고 대여섯 시간 정도면 등정할 수 있어서 맘만 먹으면 당일로도 왕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천왕봉 부터가 문제였다.
기껏해야 서울 북한산과 도봉산을 등정한 정도의 내공으로는 천왕봉에 이르자 모든 진기를 소모했다.
특히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발이 너무 아프고 뜨거워져서 장터목 산장에서 발을 씻으려 양말을 벗으니 온통 물집이 맺혀있다.
아직 해가 중천이라서 참아내면서 몇 시간을 더 지나 세석산장에 이르러서야 해가 저물어서 1박을 하기로 했다.
터팬 : 우리 여기서 자고 도로 내려갈까? 지금 다리에 감각이 한 개두 엄따. T_T
돌배 : 터팬아~ 너만 그러겠냐? 이거 봐라. 물집 짜낸 화장지가 다 젖었어.
터팬 : 어쨌건 정상은 지나온 거잖어. 종주한 셈 치고 그냥 하산하자. 내일 출발해도 또 1박해야 할지도 모른대. 우리 이러다가 山귀신 되면 어뜨케 하냐? 난 너완 달리 숫총각이잖아. 엉엉~~~@@
돌배 : (당황 + 단호한 표정으로) 고놈의 주둥이를 확 꿰매버릴까 부다. 자슥아! 난 이번에 여기 오면서 다짐한 게 있어. 여태 내가 함부로 살아온 것도 후회되고, 이번 기회에 새롭게 시작할 꺼다. 어제까지 시달리던 Girl 금단증세도 안 나타나잖어.
터팬 : 에라이~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이고… 일단 고픈 배나 채우고 쏘주 빨자.
우리는 취사도구를 꺼내서 준비한 삼겹살을 굽고, 소주잔을 권커니자커니 하며 아주 행복한 밤을 보냈다.
(혹시 오지랖 넓은 척하는 독자들이 ‘모든 국립공원은 취사가 금지되어 있다’며 따지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몇 년 뒤에 시행된 것이고, 그 당시에는 취사가 금지되진 않았었다. 몰랐지~롱. 히히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 줄 아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어머니와 아내가 차려준 정성어린 음식이다.
어떤 재료 어떤 양념 어떤 반찬을 해주더라도 당신의 건강을 위해 사랑과 정성이 담은 음식이 제일 맛있는 법이다. 그래서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그 밥상 앞에서 반찬투정을 하는 것은 그 사랑을 모독하는 중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맛있는 밥이 이렇게 힘든 여행길에서 먹는 밥이다. 반찬은 다꾸앙 하나만 있어도 좋다.
입에서는 게거품이 나고, 하늘이 노랗고 다리가 후달리는데 남들이 먹다 남은 찬밥일지라도 그 밥맛은 감히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여행에서 배운 점의 하나가 있다면 바로 그 것이었다.
주위에 반찬투정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런 여행을 시켜보라. 그리고 그 밥맛을 꼭 기억시켜보라...
다음 날 아침. 맑은 정기와 술과 고기의 시너지작용 이었는지 아니면 스무 살의 젊은 녀석들은 그래야 정상인 것인지 어쨌든 돌배와 터팬의 밧데리는 빵빵하게 충전되었고, 사기충천한 모습으로 다음 여정을 향한 씩씩한 행군을 시작할 수 있었다. 노고단을 향하여 발사!! 아자!~ 아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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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8년 후. 터팬은 돌배가 살던 동네인 안양시 평촌의 한 고깃집 귀퉁이에 마주앉아서 그 시절 지리산 종주를 회고하면서 낄낄거리고 있다.
돌배군은 삼수에 성공해서 이젠 어엿하게 D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신참이었고, 터팬은 1년 먼저 K은행에 입행하여 짤짤boy업무를 인계하고 난 후 한창 대출권력에 맛을 들이던 중 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우리 둘은 증권 쪽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생 모의투자 경진대회’ 에도 몇 번 참가했을 만큼 아마추어 치고는 상당한 실전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비록 몇 백 만원 정도지만 중 단기 매매를 통해 몇 십% 이상의 수익률을 올려서 자신감이 일취월장 하던 터라서, 우리 둘의 간덩이는 점점 커져만 갔다.
게다가 ‘아삼육’ 이었던 돌배군마저 그렇게도 원하던 증권사에 취직하여 종목정보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었으니… 대박 시나리오를 그려가던 터팬은 마냥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터팬 : 돌배야! 슬슬 배팅할 만한 놈 안보이냐?
돌배 : 음… 안 그래도 요즘 찍어둔 종목이 몇 개 있는데, 정밀 분석 중이다.
터팬 : 일단 적금이 내년이 만기니까 계속 지켜보고 있거라. 요즘 대출계에 앉아서 보니 기업들의 자금흐름도 예전만 못하고, 이상한 루머도 떠돌더라.
돌배 : 알았어. 아무튼 넌 이젠 나만 믿고, 공작금이나 계속 준비해둬.
터팬 : 우쒸. 내가 북조선 간첩이?? 왠 공작금??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같잖은 실력에도 불구하고 유치할 정도의 착각과 기고만장이 범벅이 되어 그렇게 또 그렇게 망해가는 길로 향해가고 있었다.
[ 다음 주에 3rd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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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팬의 동호회 착부동(http://myclub.moneta.co.kr/peterpan)에서 [오늘의 일기]를 오픈한 기념이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곳에 참여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한국경제신문刊 [한국형 땅부자들] 이란 책을 50분께 드립니다.
그리고 착부동 나머지 게시판에 활동하신 분들 50분을 추첨하여 역시 50분께 위의 책을 드립니다.
자세한 이벤트 내용은 착부동의 공지사항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