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새가슴의 재테크 여행 시리즈_3rd

작성자
구재성
등록일
2004/06/03
조회수
6854

지리산은 정말 깊고도 큰 산이었다.

돌배와 터팬(이하 ‘돌팬’이라 칭함)은 지난 밤에 고칼로리로 충전을 하고, 게다가 아침도 코펠로 지은 밥 그릇으로 배를 채워 가뿐한 맘으로 시동을 걸었지만, 십 수 킬로 떨어진 형제봉의 절반도 못 미쳐 전날 짜낸 물집 자리가 다시 쓰라려오고, 험한 등산길을 헤쳐나가느라 정오도 되기도 전에 잘 숙성된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물은 벌써 다 떨어졌는데, 정상 능선코스에선 당최 물 받을 곳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어찌나 사람구경 하기도 힘들던지 남원역의 그 거지들이라도 좋으니 제발 물 가진 사람만 나타나 주기만을 애타게 기대할 뿐이었다.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꺼려하던 터팬 이었건만,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아무것도 중요할 것이 없었다. 

 그 누가되었건 간에 물 한 모금 얻어 마실 수만 있다면 '초한지'의 한신 장군처럼 가랑이 사이라도 기어갈 각오였던 것이다. 

 

벽소령 즈음 접어들자 돌밭길이 더욱 험해졌는데,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씻거나 잘 때를 빼고는 벗지도 않던 안경마저도 귀찮아졌다. 

돌팬은 서로 말이 없어졌다. 교대로 짊어지던 식량가방조차 던져버리고 싶어졌다.

 

깊은 산속이라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한기를 느끼기도 했지만, 긴 팔 남방은 벌써 아무렇게나 배낭에 쑤셔 넣은 채 땀으로 쫄딱 젖은 반팔 쫄티 차림으로 나뭇가지 지팡이에 온몸을 의지했다.

땀이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뱉어내지도 못했다. 침이 아까웠던 것이다.

 

믿었던 프로스펙스 운동화는 도시의 젊잖은 포장도로만 댕기다가 팔자에 없던 등산길 적응에 실패해서인지 표피는 늘어지고 홀딱 까져버렸다.

쪼~오기 보이는 봉우리만 넘어가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은 열댓 번 넘는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 힘든 코스에서 한가지 이상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질질 끌다시피 하는 걸음걸음에도 무엇인지 콕 집어낼 수 없는 야릇한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찌릿하기도 하면서 건전지에 감전이 된 것과 비슷한…그런 느낌이 끊임 없이 전달되어 왔다.

 

매번 가위바위보에 져서 식량베낭을 짊어지고서 낑낑대던 돌배에게 ...

 

터팬 : 으~?. 으~?~~(숨차서 껄떡대는 소리다) 돌배야! 괜찮냐? 아직 미쳐버리지는 않았지?

돌배 : 끄~으으?…. 말 시키지 마. 시꺄!!

터팬 : 혹시 뒷다리 쪽으로 이상한 느낌 안 받니?

돌배 : 뒷다리??-_-;;; 이 심산유곡에서 나의 ‘이단뒷다리휘돌려찍어차기’에 맞고잡냐?

   산신령님이 씨아시 잘된 ‘포카리스웨트’ 한 박스 들고 나타날 것 같은 느낌밖에 없다. ^^;; 

터팬 : 말하는 싸가지만 봐서는 에베레스트까지도 달음박질 할 놈일세 그려. 내딛을 때마다 잘 느껴봐.

       이눔아. 걸을 때마다 무언가 전류처럼 다리를 타고 올라오잖아.

돌배 :  쯧… 곰팅이처럼 둔하기는…넌 그걸 이제사 느꼈냐? 난 아침출발 할 때부터 그랬어 짜샤.

 

그랬다. 바로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인바,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정기가 모여있는 곳으로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강화의 마니산을 꼽고 있는데, 이 곳 지리산도 그에 못지않게 그 기운이 맑으면서도 은근하여 소위 심신을 수련하겠다는 사람은 시간을 잊고 짱 박혀 살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다들 이곳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라고 한 것이었나??

 

돌팬이 그 지리산 여행 길에서 거둔 두 번째 수확은  벽소령 중간쯤 다다라 거의 지리산 폐인이 될 무렵이었다.

 

돌배 : 터팬아! 이젠 헛것이 보이는가벼. 쪼~오기 희멀건 오아시스가 걸어가는 거 보이냐?

터팬 : 몰라 임마. 안경 안 쓰면 니 콧구멍이랑 눈깔도 구별이 안 된다는 거 몰라? -_ㅡ;;;;;

돌배 : (있는 힘껏) 아저~씨이~~~ , 여기요 요기~ !!!  

돌팬 : (함께 벗은 옷을 휘돌리면서 )여기 사람 죽어욧!! 꺄아아~악!!  불이야!~~  간첩이다!~~~  헬푸 미~~

 

돌팬이 최후의 기력을 짜내어 갖은 발악을 한 효과가 있어선지, 그 청학동 패션의 젊은이가 우릴 발견하고 득달처럼 달려왔다.

 

청학동 : 워메~ 산송장이 따로없네잉~ 워짠일로 부르셨다요?

돌배 : 헥헥~~!! 저기요~ 저희들이 지금 너무 지치고 물 한 방울도 없걸랑요. 혹시 물 좀 있으시면 딱 한 모금만 주시면 안될까요? Please~   

청학동 : 아따~ 고것은 시방 없는디… 워쩐다요? 여그서 쪼까 내려가믄 지가 사는 움막에 거스기가 있을꺼인디…

터팬 : (화색이 돌아 폴짝거리면서) 아이 좋아라~ ~♪~♬~ 어서 앞장서세요.쇤네들은 굴러 갈께요.  ^^

 

그 Mr.청학동이 기거하던 막사는 흡사 청동기 시대의 움집 같았다. 

움막을 구성하고 있던 국방색의 천막과 함석판넬, 그리고 손전등과 버너 따위가 아니었더라면 조선 말엽의 화전민이라고 빡빡우겼어도 딱히 반론꺼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Mr.청학동은 S대학 대학원과정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서 몇 년 전부터 학교선배와 함께 그곳에서 단학수련을 하고 있단다.   

좀더 자세히 소개하자면 증산도를 바탕으로 하여 고대경전을 공부하면서 아울러 탁기를 정화하고, 맑은 기운을 쌓는 소위 元氣를 배양하고 있단다. 

 

터팬은 그전에 그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책에 심취한 적이 있었기에 Mr.청학동의 행적이 신기하긴 했어도 사뭇 이해가  갔지만, 돌배는 끄덕이기만 할 뿐 관심은 없는 듯 했다.

 

Mr.청학동의 나이가 돌팬보다도 예닐곱 살 정도 많아 보였기에 제자를 자청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이곳에다 풀면 오해의 소지가 많을 수도 있기에 생략하련다. 

우야둥둥… 그와의 만남은 훗날 터팬의 역사관과 우주관 및 행동양식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돌팬은 그곳에서 고로쇠 수액과 칡즙도 한잔 얻어먹었다.

또 그가 알려준 도인법 (導引法 : 도사가 되는 법이 아니다. ^^)을 익혀서 한동안 써먹었다.

도인법은 막히고 피로해진 혈도를 풀어주는 일종의 ‘경락마사지’라고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가 손수 터팬에게 시범을 보여줄 때는 좀 아프긴 했지만 절름거리던 다리에 금방 피가 돌아서 사우나를 끝마친 후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건네 받은 ‘도인법기초’사본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터팬에게 예쁜 짓 많이 하면 Recopy 해서 줄 수도 있다. ^^;;;     

우린 그분한테 큰 인사를 하고 점심까지 얻어먹고서야 그곳을 떠났다.

 

우리 인간에게 여행은 남는 것이 많다. 떼거지관광도 나름의 가치는 있겠지만 돌팬의 지리산 여행에는 쨉도 안 될 것이다.

 

다소 무리가 있는 비교를 해보자면…

편하고 남들과 우르르 몰려 다니는 관광과 힘들지만 내가 자유로이 선택하는 배낭여행,

그리고 남들이 돈 모으고 잘사는 것을 비교하면서 그들을 따라서 돈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재테크와 미래의

행복을 위한 여러 수단의 한가지로써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준비하는 재테크…

어느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인가?  

이 말을 ‘남들 신경 쓰지 말고 홀로 독야청청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난 그 독자를 과감히 포기하련다.

 

돌팬 듀엣은 그날 무사히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날의 숙소로 정했다.

배낭이 닿는 어깨마저도 퉁퉁 부어서 초짜의 정신력으로는 둘 다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역시 어제처럼 삼겹살 근 반과 소주 두 병을 깠다. 그곳은 급수사정이 시원치 않아서 등목을 하진 못했다.

 

돌배는 일찍이 잠 들고, 터팬은 산장 밖으로 기어 나와 별구경도 하고 혼자 그 Mr.청학동 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우리나라와 인류의 기원, 우주의 원리, 氣와 인생관 등등…그와의 대화는 너무도 깊이깊이 뇌리에 박혀버렸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터팬은 알딸딸한 술기운과 육신의 피로에 의해 산장의 침소로 유인 당했다.

 

이름 모를 산새와 풀벌레소리 그리고 청량한 지리산의 정기와 별과 달이 합주하는 교향곡을 감상하면서 아주 깊은 꿈나라로 찾아 들었다. 

 

1999년 여름.

우린 늘 그랬듯이 만날 때마다 죽도록 고생했던 우리의 숱한 여행이야기와 아울러 돌배가 고발하는 증권가의 부정과 펀드매니져들의 비리 등이 점철된 [생생토크]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 당시는 IMF 직후 나라경제가 온통 아작이 나고 온 국민이 참여한 금모으기와‘Buy Korea’열풍이 한창이었다.

당연히 주가는 바닥에서 헤매다가 슬슬 올라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호시탐탐 그 터닝포인트만 노리던 돌팬은 ‘올인’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다.

 

돌배 : 터팬아! 때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안전성 고려해서 4대재벌 계열종목으로 뽑아봤다.

        이 셋 중에서 하나 골라라.

터팬 : 음냐… 이거 죄다 요즘 너나없이 달려들고 있는 추천 종목이잖아. 괜히 상투 잡는 거 아녀?

돌배 : 짜슥아. OO 이론도 그렇구, 모멘텀과 펀데멘털이 어쩌구.. 암튼 얘네들이 중단기적으로 뭔가 보여줄거다.

터팬 : 넌 어떤걸 골랐냐?  너도 이거 중에 투자했겠지?

돌배 : 잔말 말고 해라. 나도 이거 할 꺼야. 나 못 믿어?

터팬 : 좋아. 이중에서 네가 맘대로 배팅해라.그런데 조금이라도 낌새 이상하면 잽싸게 갈아타라. 난 너만 믿고 지켜볼란다.

 

터팬의 피 같은 종자돈 5,000만원은 당시 가장 잘나가는 업종대표종목에 올인이 되었고, 터팬의 피말리는 마지막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 4th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