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어느 은행원의 '비리의 추억'

작성자
구재성
등록일
2004/05/03
조회수
10065

은행, 보험회사나 증권회사 등 금융회사는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감독기관으로부터 정기적으로 혹은 불시에 검사를 받곤 한다.

 

금융감독원 검사 말고도, 각 금융회사 내에는 ‘검사부’ 라는 감독부서가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들이쳐서 온 영업점을 헤집으면서 일주일 동안 직원들을 곤죽으로 만든다.

 

터팬이 은행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던 1996년도쯤인가?

아직은 이 악명 높은 검사가 뭔지도 모르던 순딩이 시절의 터팬은 손바닥에 잔뜩 돈독이 올라서 우둘투둘해진 허물을 벗기면서,  그날도 여념없이 그날 장사가 잘된 건지 현찰을 카운터 하고 있었다.

 

흐… 말 나온 김에 잠시 삼천포로 빠져 볼란다.

은행의 공신력에 다소 흠집을 내게 되어서 쬐끔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은 은행원이 아니니깐 안면 까고 솔직히 그 비리를 폭로하자면…짤짤맨에게는 다음과 같이 부수입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첫째. 현찰을 만지는 거래처가 가져온 돈다발 속에는 간혹 10만원 짜리 수표가 낑겨있기도 했다.

어떤 동기녀석은 100만원 짜리도 챙겼다며 자랑하지만, 불행히도(?) 10만원 짜리 수표 예닐곱 번 밖에는 챙겨보질 못했다.  하지만 100만원 짜리 수표보다는 10만원 짜리가 낫다. ^^;; 왜냐면 10만원 짜리 되찾겠다고 공시최고와 지급거절 절차를 밟을 정도로 악착같은 위인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동전환전을 해줄 때의 사소한 즐거움이 있다. 

물론 더 내줘서 쌈짓돈을 꼬나 박을 때도 있었지만, 초창기 몇 달간 100만원쯤 박고 나면 내공이 쌓여서 차츰 흑자(?)로 전환되기도 한다. 물론 의도적으로 덜 주는 건 아니고, 손님이 가져온 동전을 카운터 할 때 불량한 동전계수기가 상당수를 잡아먹곤 하는데. 주간단위로 그 놈의 내장을 청소하다 보면 몇 천원에서 몇 만원까지 챙기게 된다. 500원짜리 주화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늘 그이에게 감사하면서…... 

 

셋째. 현찰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짭짤한 ‘뇌물’도 그 한가지다.

 

은행점포에서 제일 권력이 없는 업무가 짤짤맨의 업무였지만, 시장통이나 주유소, 운수회사를 거래처로 둔 점포라면 간혹 권력을 행사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영업점 모든 현찰의 수요공급을 관리하는 업무의 특성상 쌔돈 교환은 터팬이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었다. 은행 영업점別 시재한도 (현금을 보유할 수 있는 한도)가 있기 때문에 한도관리에 보탬이 안 되는 쌔돈의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환전해주는 것이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꽤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그야말로 쌔 돈을 바꿔주고 안하고의 여부는 짤짤맨 맘대로다. 터팬한테 박카스라도 한 병 슬쩍 찔러주면 몇 십장쯤은 바꿔주지만 100장 단위가 넘어가면 그 정도로는 콧방귀도 안 뀐다.  혹시 참한 처자라도 소개팅 해주면 적어도 한 달간은 무제한의 혜택을 부여하기도 한다. ^^ 남들은 그 따위 권력에 희희낙락 하는 터팬을 얼마나 같잖게 볼런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런 즐거움 마저 없었더라면 아마 홧병이 났거나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봄날 은행 셔터가 닫히고 한참 지난 시각인 오후 5시경. 교도소 면회실처럼 생겨먹은 한 평 남짓의 유리방을 왠종일 사수하면서 그 날도 현찰장사를 잘했는지, 혹시 남는 돈(?)은 없는지 두 눈깔에 잔뜩 힘을 주면서 일과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창구에서 장사를 끝마치고 수다를 떨던 텔러 아줌마들의 돈뭉치를 수거할 시간이 되자

 “자~자 오늘도 어김없이 일수 도장찍으러 와쓰여~~ 하면서 돈뭉치를 걷으려는 찰나에….

 

비상문으로 넥타이 차림에 007가방을 든 독수리5형제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업무종료시간을 과감하게 무시하는 그들에게 적대적인 눈길을 보내던 터팬은 올 것이 왔다는 굳은 표정을 짓고 앉아계신 박과장님께 투덜댄다.  

 

터팬 :  “월렐레?? 저 아저씨들 누구래요? 영업시간 끝났는데 무슨 배짱으로 들어오셨을까요?”

박과장님 : (들은 척 만 척) 아이구~ 오셨군요? 어서 오십셔~

터팬 : 박과장뉨~ 안돼욧~ 벌써 시재마감 되었는데…?  

박과장님 : 터팬아… 너 자꾸 멍청한 척 할겨? 웃길라구 코메디 하는거지? 지금 본점에서 검사 나온 거야 임마. 좋은 말로 할 때 잽싸게 돈 통 풀거라잉. 조용히 검사 받자.

터팬 :  (울상이 되어서) 예고도 없이 이렇게 들이닥치는 법이 어디 있대요? 어허헝…이건 반칙이야~.

박과장님 : 터팬이 너 찔리는 짓 했냐? 왜 그러코롬 얼굴이 똥색이 되었냐?

 

아흐~터팬은 아무 생각없이 대충 처리했던 비리를 감쪽같이 대비했어야 했는데, 미처 준비를 못한 것이었다. 은행에서는 고객이 맡긴 지폐를 시중에 유통 가능한 ‘사용권’과 오염되거나 찢어진 ‘손권’, ‘손상권’ 등으로 분류해고, 이것들은 별도로 보관했다가 한국은행에서 再예치를 하거나 교환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분류 작업을 은행용어로 [정사?] 라고 진즉 밝힌 적이 있다. 모르시는 분은 터팬의 글만 검색해서 쭈~욱 훑어보시길 바란다.

 

우야둥둥… 손상권 만큼은 장부에 기록해서 쌔돈처럼 별도의 금고에 보관해야 했던 것을, 터팬은 몇 장 안 되는 그것을 처리하는 일이 귀찮아서 기록도 없이 개인서랍에 넣고선 시재에 포함시키지를 않았다.

 

꺽다리 검사역 한 명이 득달처럼 유리방에 들이쳐서는 터팬은 나가있으라고 하고는, 여기저기 샅샅이 뒤지다가 대번에 그 비리를 적발하고선 왕건이를 건졌다는 기세로 추궁했다. 

당연히 규정위반 1번 타자가 되어서 경고조치를 받았다.

 

다른 동료들도 한 두건이라도 다른 지적사항이 있었다면 맘이라도 덜 불편할 텐데… 5일간의 검사를 받는 동안 한 건도 적발된 것 없이 터팬이 저지른 ‘시재관리부실罪’ 만 유일해서 검사우수점포에서 탈락하는 변고에 외로이 독박을 썼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꼬투리를 잡히자 열이 뻗칠 대로 뻗친 모든 고참들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쳐다봤다. 특히 대빵이신 지점장님은 인사를 해도 받지도 않았고, 터팬Killer 박과장님은 여기가 군대라면 군기교육대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송승헌 눈썹을 실룩거리신다. 사실상 ‘고문관’ 대우를 받은 채 달포가 넘도록 그렇게 보냈다.

 

그 절대고독의 왕따 신세를 면하고자 터팬은 조만간 실시될 은행 內 업무평가시험에 대비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기로 작정했다.  퇴근하면 가까운 모교 도서관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자정이 넘도록 시험 준비를 했다. 

 

그 결실로 1년 차 행원의 신분으로는 이례적이랄 수 있는 2,000여명 중 2등을 했다.

평균 60점 대였던 전반적인 분포에도 불구하고 터팬은 90점을 받았으니 지점 평균점수가 쑥 올라가버려 덩달아서 지점성적도 수원지역의 15개 점포 중 수위를 차지했다. 대빵은 귀밑까지 입이 찢어져서 지점장실로 불러서 칭찬까지 해주셨다.

 

그야말로 한달 새에 지옥과 천국을 순례한 것이다.  박과장님두 조용히 불러서는…

“너두 밥값 할 때가 있구나. 어쩐지 요 며칠 비계살이 빠지는가 싶었더니 공부하느라 그런 줄은 몰랐쥐 ^^. 암튼 그동안 욕봤다. 이제 고문관 명찰 떼주마”

“엉엉…그 동안 느무 외로웠어여~ 앞으로 더 많이 많이 이뽀해주세염”

이 글을 쓰는 터팬의 얼굴이 왜 이리 후끈 달아오르는지 모르겠다.  -_ㅡ;;;;

 

은행이 아닌 다른 금융권에서도 이렇듯 표독스러운 업무감사와 실력평가 제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터팬은 입행 첫해에 남들은 쉽사리 겪어보지 못했던 일을 한꺼번에 경험을 했다.

 

그 때를 회고하면서 몇 글자 끄적이자면, 과연 과거나 현재도 은행은 공신력으로 먹고 사는 조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년에 한번씩의 정기검사, 삘 꽂히면 지들 맘대로 짱가처럼 나타나는 불시검사. 몇 년에 한번씩 오는 감독원의 검사, 지점 내에서 매일 하는 업무통할담당책임자의 검사, 기타 공신력을 지켜내기 위한 수많은 감독절차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비리와 횡령 사고가 생기는 것을 보노라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또 은행은 해마다 4회 이상의 실력평가시험이 시행된다.

수신, 여신, 카드, 세무, 법률, 부동산 등 이런 시험이 존재함으로써 방문하신 고객을 불편 없게끔 도와드리고 재테크에 필요한 더 많은 정보를 드림으로써 믿고 돈을 맡기게끔 공신력을 높이자는 취지였으리라.

 

요즘은 인건비 절약과 노동력 유연성 따위를 이유로 들면서, 그런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운 非정규직 직원을 중심으로 영업창구에 배치함으로써 對고객 응대에 수많은 불만을 야기하는 꼬라지를 보면, 요즘 은행이 은행답게 본래의 역할을 해내는 것인지 씁쓸할 뿐이다.

 

또 온갖 명목을 붙인 높은 수수료, 눈곱만한 예금금리, 정성이 담기지 않은 업무처리, 고액예금자 중심의 서비스, 툭하면 터지는 금융사고…  이런 일련의 몰상식한 현상들이 IMF 이후에 선진금융시스템이 도입된 결과물 이라면, 시범케이스로 몇 개 은행을 더 퇴출시켜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민들이 기대하는 공신력을 맘대로 왜곡했다면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착부동 여러분들께서도 금융회사를 이용하다가 이런 불편사항을 겪으셨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목소리 높여 따끔한 일침을 날리시길 바란다. 못돼 먹은 정치인들을 우리 손으로 바꾸었듯이, 소중한 돈을 맡기면서도 은행의 일방적인 행태에 속절없이 휘둘릴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그들 위에서 군림하며 우리 아웃사이더들이 헤게모니를 가져야 제대로 된 상식이 아니겠는가?

 

그 어떤 고귀한 것도 ~답지 못하면 종국에는 파멸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서민고객을 주인없는 똥개로 여기는 은행들!! 이제라도 정신차려라. 느덜 자꾸 터팬을 열 받게 하면 우리 동호회랑 모네타가 대동단결하여 ‘OO은행 왕따 시키기’ 캠페인 할지도 몰라…우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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