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이번 봄에 이르기까지 저는 두 가지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미국 아이비리그 박사과정 합격증입니다. 제가 다시 미국에 박사 하러 간다니까, 멋지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미쳤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맞습니다. 미치지 않고 이 나이에 애 딸린 아줌마가 공부한다고, 그간 이루어 놓은 거 다 버리고 그 고생하러 다시 떠날 수는 없는 거죠. 석사하러 미국 갈 때는 마냥 신나기만 했는데, 사실 지금은 너무도 많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박사하고 나면 내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유학비용은 계속 댈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버린 것이 아닌가?” 커다란 바위도 처음에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굴려 놓으면 오히려 작은 돌보다 더 많은 가속이 붙듯이 어떤 일도 처음 하는 것이 힘들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어떻게든 굴러가게 마련이라는 ‘무대뽀 정신’으로 다시 한번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려 합니다.
꿈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세상과 또한 자기자신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투지와 같은 말일 테니까요.
“정상에 서서야 알았습니다. 그 너머에 새로운 세계가 이 있다는 사실”
모 증권사 광고 카피입니다. 30대 중반의 나이. 그말이 실감이 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맞는 자신의 세상에 서른을 정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결혼을 하게 되는 여성들의 경우 더욱 그런 것 같구요. 하지만, 서른이 되어 산에 오르니, 그게 끝이 아니고, 거기서 죽을 때까지 살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서른에 꽤 괜찮은 학력과 경력,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생인 전문직 남편, 예쁜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서른에 오르니, 더 아름답고 험준한 산이 제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산을 다시 한번 오르려고 합니다.
저도 그랬고, 아마 모든 사람이 어딘가를 향해 오르지만, 거기에서 바라본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 지, 구름위 정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리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엿볼 수는 있지만,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일테니까요. 다만, 삶이라는 것은 죽기 전까지 끝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고, 어떤 일이든 계속 일어난다는 겁니다.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기보다는 미래에도 어려운 일을 잘 헤쳐나갈 수 있고, 삶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지혜, 기술, 그리고 재원들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하게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20대에 험준한 산을 올라서 정상에 서는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은 30대에도 또다시 험준한 산을 올라 더 높은 곳에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더 들어서는 세상 어느 곳이든 다닐 수 있는 자유를 향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돈이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잘 알고, 도전하고, 실패도 극복하며, 성취감을 느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 있는 자유이자 특권입니다.
하지만, 20대에 몸을 사리고 낮고 쉬운 산, 혹은 그 정상이 뻔한 산, 그리고 그 산에서 머물 생각으로 산으로 오른 사람이라면 30대에 기다리고 있는 산을 오르기에는 이미 역부족이 되어 있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70-80년을 사는 인생 나이 서른에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 삶은 굉장히 비극적인 것입니다. 이제 서른은 어떤 성취와 안정을 주는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죠. 그건 40대든, 50대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나이대의 구분도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는 서른에 죽지만 누구는 100살까지도 사니까요.. 세상사람들이 그 나이 대에 사는 것에 발 맞춰 가는 것보다 내 삶에 발맞춰 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제가 너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50년이나 남은 인생… 지금 씨 뿌리지 않으면 나중에 너무 비참할거 같아서요. 돈이 없으니, 노력과 고생으로 때우는 거죠.
지금 인생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지금부터 인생역전을 꿈꾸십시오.
과거를 후회하고 팔자나 환경 타령은 해봤자 나에게 득 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왜?”를 묻지 말고,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세요.
“왜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나?” “왜 나는 어렸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나?” “왜 내 주변에는 멋있는 남자가 없나?” “왜 나는 이런 남자와 결혼했나?” 이런 질문 들을 “어떻게 하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도 부자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력 콤플렉스를 타파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멋진 남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내 남편을 왕자로 만들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홀로 설 것인가?” 로 전환해서 고민한다면 답은 보일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 어두운 과거, 열악한 시작점은 나를 더 빛나게 해주는 들러리가 될 것입니다.
인생은 노력하는 만큼 자기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 끌려 다니느냐, 인생에 주인이 되어 끌고 나가느냐는 결국 한발자국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끌려가는 사람이나 끌고 가는 사람이나 힘들고 고달픈 것이 삶입니다. 하지만 만족하는 정도나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 한발자국의 차이는 지금 무언가를 바꾸면 극복할 수 있을 지 모릅니다. 그것이 누구나 다 아는 자명한 방법이 될 수도 있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투자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로또도 1,000원 내고 사야지 당첨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저게 내 것이 되겠어?” 라고 가만히 있으면 꼭 그렇게, 절대로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내 것이 될거야” 라고 믿고 다가간다면 언젠가 그것이 내 것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공도 그렇고 행복도 그렇습니다.
행복은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성공과 행복은 절대로 남이 줄 수 없는 것이라는 것과 팔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만들어 낸 두번째 작품은 ‘서른살 여자가 스무살 여자에게’ 라는 책입니다. 제목은 상징적인 것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인생을 충분히 많이 산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잘나거나,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는 더욱 아닌 제가 이런 책을 쓴 까닭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여성들이 다같이 힘내자는 의미에서입니다. 누군가 “여성 운동가보다 뛰어난 여성이 필요합니다”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여성운동가의 역할도 있지만, 결국 뛰어난 여성이 없다면 여성운동가의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외침은 그저 의미없는 울림일 뿐이겠죠.
세상에서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더 큰 용기를 내고, 실패부터 시작하세요. 다시 말하지만 꿈꿀 수 있는 자유, 성공과 행복은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것이 아닙니다. 뒷방에 앉아 실패의 계산기 두드리는 동안 저처럼 애 딸린 아줌마가 감히, 혹은 저같이 다 가진 여자가 더 갖겠다고 덤빌 테니까요. 아니면 본인이 선택한 삶을 온전히 사랑하세요. 어떤 상태이건 본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도 용기 없이는 힘든 일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