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가계부 쓰던 대학시절

작성자
구재성
등록일
2003/10/24
조회수
7948

다들 초딩때부터 그림일기를 비롯한 일기숙제를 강요당하면서 일기를 쓰면 무엇이 좋은지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방학이면 탱자탱자 놀다가 개학 직전에야 수십일분의 밀린 일기를 그려대고 베껴 쓰느라 生show 를 했던 기억을 하면서 자그맣게 웃어본다.

 

 터팬은 4년간의 대학생활을 고시원생활과 자취생활로 지새우며 터팬스럽지 않게 일기를 꽤 썼었다.  지금 생각하면 쓰잘데기 없기만 한 사법고시준비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무던히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터팬보다 2년 먼저 고시를 준비하던  K선배 曰 "고시는 자기와의 싸움이고, 체력과의 전쟁이야. 매일 거르지 말고 일기를 쓰면서 하루하루의 진도를 체크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도 좋은 방법" 이라면서  일기쓰기를 강권했다.  

 

 그렇게 강추하던  K선배는 나중 알고보니 정작 본인은 일기를 쓰다가 포기했었단다.  한달이나 썼으면 몰라, 고작 2주정도 하다가 기도하는 걸로 바꿨다나?  쩝~!   한심스러워서  그 인간을 별로 신뢰하지 않게되었다.

 

 아무튼 터팬은 십여년만에 다시 일기를 쓰게 되었다.

 당시로선 귀하디 귀한 386 PC 로 일기를 썼다. 지금은 거의 멸종되어버린 5.1인치 플로피디스켓에 저장하면서 말이다.  복학 직전 몇달간 운수업(?)알바를 하면서 모은 비지땀으로 장만한 것이니 터팬을 부르조아라고 칭하지 말아달라.

 

 한달 용돈이 자취를 하기에 적절한 수준인 20만원 이었는데, 살림스케쥴을 세우길...  15만원 한도내에서 삼시세끼와 사고싶은 책이며, 기타 인간으로서 필요한 최저생계를 꾸려나가되  매월 5만원 이상은 저축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기를 쓰면서 제일 아랫쪽에 당일의 지출과 수입 (수입은 한달에 한번만 발생했쥐 ^^;;) 을 일목요연하게 적어내기 시작했다.  

 

 가계부의 마력은 참 대단한 것이었다.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 거품이 자동으로 제거된다는 말이다.

 

 터팬은 일기와 가계부의 시너지 효과인지 어떤 건지 알게모르게  변해갔다. 쌓여가는 잔고를 보면서 아드레날린도 분비되면서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10여년 전쯤이면 대개 대학구내식당의 한끼 밥값은 600원이었는데, 이 돈마저 아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추접스럽게 그 밥값을 깍았냐구?  터팬을 뭘로 보구 그러시나?  아무리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짓 안한다. 차라리 밥을 더 달라고 했으면 했지... -_ㅡ;;;

 

 구내식당은 밥을 늘 넉넉히 하는 편이었다. 젊은 넘들이 워낙 예측불가능 할 정도로  퍼먹어대니깐 혹여라도 모자라서 항의집회라도 당할까봐 겁났는지 어땠는지 목표가 생겨 집요해진 터팬은 그 짬밥조달현황을 감지했다.  

 

 그래서 늘 남들 다먹고 한산해질 무렵에 식당을 찾아가  당당히 제값(?)내고 사먹었다.

 

당당히 사먹고 나서  식판을 넘기고 한창 설거지 하는 곳으로 가서 "아짐마~ 저왔어요" 라고 크게 인사하면 식당 아줌마들이 반가워 하신다.

 

  "옹냐~ 터팬이 왔냐. 오늘은 얼마나 퍼줄까?"   "오늘은 3인분만 주세요."

 

 "헉...!!! 이게 먼소리냐~?"  고 놀라신 분도 계실거다.  여하튼 터팬은 구걸 비슷한 짓을 했다.  지금이라도 울엄니가 이 사실 아시면 밥주걱으로 터팬의 귀싸대기를 향해 풀스윙을 하실런지 모른다. 제발 꼰질르지 말아달라.  

 

  25살의 한창 성장하던 터팬은 밥을 무지 많이 먹었다. - 지금은 안그러냥? -

반찬이야 머..예나 지금이나 신김치랑 시래기 국물에 고추장만 있어도 마냥 껄떡대는 터팬이기에  덜쉰 밥과 밑반찬의 확보가 중요했다.  그래서 식당 아줌마에게 불쌍한 고시생처럼 보여서 학우들이 미처 먹지 못한 밥을 얻어가기로 한것이었다. (결코 짬통의 밥이 아니다)

 

 평일은 3~4인분 정도, 거머리들의 방문이 예상되면 10인분 정도까지도 얻어서 적당히 나눠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렌지에 해동해서 먹곤했다. 냉장고와 렌지는 자취하다가 군대가는 넘들 것을 협박과 공갈, 안 통할 땐 맥주 서너병의 접대로 인계받아서 썼다.

 

 매일 저녁 구내식당의 여물배급이 끝나갈 무렵이면 틀림없이 짱가처럼 나타나서는  맡겨놨다는 듯 밥과 반찬을 달라고 하는 터팬이 식당아줌마들에겐 어찌 보였는지는 몰라도, 터팬은 각오한 바가 있기때문에 꿋꿋하게 해냈다.  그 고마운 아줌마들껜 정기상납도 잊지 않았다.워낙 50대가 넘으셨고 궂은 일만 오래 해오신 분들이라 소주 몇병과 육포를 사드리면 무척 좋아라 하셨다.  지금 그런 짓을 또 하라고 하면 할수 있을까?  혹시 모르지...? 사람의 앞일은 모르니 막상 닥치면 그 정도는 또 할수 있을 것도 같다.

 

 용돈 중 가장 지출비중이 컸던 먹는 비용을 이런 식으로 아꼈으니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리?  입는 옷 또한 같은 고시생이 봐도 부끄러울 정도로 딱 세벌이었다. 봄가을용, 여름용, 겨울용...  아니다 한벌 더있다. 강의 끝나면 퇴청해서 갈아입을  때 안타는 곤색 츄리닝 한벌... ^^;;;;

 

 이런 처절한 생활을 2년여 하다보니, 200만원 정도가 모였다.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는 사람만 알것이다.

 

 이 경험은 대단한 성취감을 안겨주었고 자신감도 북돋워주었다.  전과목 all  A+ 보다도 가치있는 것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여 돈이 절실했던 것도 아닌, 단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짧지않은 2년 동안을 일기도 쓰고, 이런 목표도 달성했으니 말이다.   

 

 남들에겐 아주 사소한 성취이고, 또 민망스러운 추태일런지 몰라도 터팬에게 있어서 그 짜릿한 경험은 지금도 소중한 추억일뿐 아니라, 이후에도 얼마든지 추접한 생활을 감내(?)할 수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뻔뻔스러운 짓을 해낼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철이 없었다고 해야할까? 더큰 한켠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무튼 구내식당이나 청소 아줌마들에게 터팬은 전설적인 인물이었으리라.

 

낯가죽 두꺼운 놈으로 알려졌는지, 아니면 기특한 놈으로 기억됐을런지는 몰라도 오가다가 마주치면 냉큼 인사는 잘했으니깐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닐 것으로 미뤄 짐작해본다.   

 

아웃사이더 여러분들아... 터팬처럼 살지는 마시라. 얻는 것도 있었지만 잃는 것도 많다. 터팬을 본받아 그렇게라도 돈을 모으시려거든 잃는 부분을 조심하길 바란다.  잃는 부분이 뭐냐고???    다음에 알려주련다.  

 

 지금 문득 떠오르는...   

 

 터팬이 4년간 몸담았던  법정대학관 청소아줌마는  원래 식당에서 일하시다가 어찌어찌해서 보직변경되셔서 옮기셨고,  가끔 무릎이 아프셔서 깡소주로 이겨내시곤 했는데, 지금은 어떠하신지 궁금하다.   

 

 평생을 그렇게 남편없이 잡부용역으로 일하시면서  두 딸을 대학까지 보내셨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외손주새깽이들 재롱을 한껏 받으시면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터팬이 추억하는 그 아줌마는

 

행복하게 사는 두 딸자식을 바라보면서 늘 흐뭇한 마음으로 사는 착한 OutSider 부자일 것이라고 믿는다. 아푸지 마시고 잘 사세요~

 

[ 이러한 터팬과 비스무리한 생각이나 추억을 갖고 계신 분들을 위한 동호회를 맹글었습니다. 재테크 초보를 위한 알짜 유료정보(무료제공)와 나쁜부자 욕하기, 부자되면 뭐할래? 등 바로 우리들만의 얘기마당을 마련했답니다. ^^ 착한부자를 꿈꾸시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우리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 동호회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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