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유럽에는 ‘창문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응? 창문세? 창문에다가 세금을 매긴다는 말인가? 별 희한한 세금이 다 있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세금입니다. 영국에서는 창문의 개수에 따라서, 프랑스에서는 창문의 폭에 따라서 세금을 매겼습니다. 지금이야 개인의 소득이나 재산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게 쉽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주택의 창문 개수와 폭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수와 재산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창문세를 도입한 겁니다. 나름 일리가 있는 발상이긴 하지요? 하지만 세금에는 항상 반발이 있는 법. 사람들은 창문세를 줄이기 위해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리거나, 창문의 폭을 줄여 위아래로 길쭉한 모양의 창을 냈습니다. 그런데 창문을 줄이거나 없애면 당연히 빛과 공기의 순환에 문제가 생겨서 실내가 어둡고 축축해지겠죠. 그 당시에 형광등이나 공기청정기가 있을 리 만무하지요.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살면 신체와 정신에 병이 생기기 십상입니다. 창문세 때문에 생겨난 창문없는 집은 실제로 당시 사람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고 프랑스에 창궐했던 전염병의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조사결과도 있어서 결국엔 창문세가 폐지되었습니다. 현재에도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서는 이런 특이한 집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세금에 대한 반발, 즉 조세저항을 목숨을 담보로 표현한 셈이 됐습니다.
이 조세저항은 세금이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로 항상 존재해왔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와 국민이 벌이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걷으려는 국가와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하는 국민의 줄다리기 게임 말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아이러니하게도 승부가 나면 곤란한 게임입니다. 국가가 이기면 국민의 재산권에 막대한 침해가 불가피하여 넓은 의미에서 공산주의화가 될 것이고, 국민이 이기면 국가가 돈이 없어서 여기저기 돈을 구하러 다니는 ‘빌어먹을 나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상황 모두 우리가 원하는 모습은 아닐 겁니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의 줄다리기는 둘 중 하나가 승리해야 하는 승부게임이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승리하는 균형게임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균형점은 어디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데, 사실 이 균형점을 찾는 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숫자상으로는 ‘조세부담률’이라는 개념을 자주 언급하는데, 조세부담률은 국민이 낸 총 세금을 경상 GDP로 나눈 것으로서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19.7%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100원 벌면 20원 정도를 세금으로 낸다는 말입니다. 이 정도면 적당한 수준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과 비교를 해 볼까요? OECD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OECD 34개국 평균은 24.6%인데 덴마크(47.1%), 스웨덴(35.3%), 노르웨이(32.8%)가 상위 1~3위를 차지했고, 우리나라(19.7%)는 평균보다 낮은 25위이고, 미국(17.6%)은 30위, 일본(15.9%)은 33위로 최하위권이라고 합니다. “음, 역시 유럽쪽 애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군. 뭐 걔네들은 복지가 잘 돼있으니까. 어라? 근데 미국, 일본은 우리보다도 적게 내네?” 대충 이런 느낌이 들지 않나요? 잘 사는 나라는 세금을 많이 걷고 못 사는 나라는 좀 덜 걷는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OECD 통계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세부담률은 국민 개개인이 느끼는 세금에 대한 부담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지극히 집계적인 숫자일 뿐입니다. 평균을 내긴 했는데 대다수가 평균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는 말이죠. 따라서 조세부담률과 같은 숫자로 줄다리기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여의치가 않습니다. 이에 필자는 균형점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내가 내는 세금이 행정, 안보, 치안, 복지 등의 형태로 나에게 돌아올 때 이들 공공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만족도가 높으면 세금이 아깝지 않고, 만족도가 낮으면 세금이 아깝게 느껴지겠죠. 결국 조세저항의 심리적 균형점은 개개인의 세금에 대한 만족도가 그 열쇠를 쥐고 있는데 이것은 개개인의 보험에 대한 만족도와 매우 유사합니다. 한번 비교해보죠.
보험회사(국가)는 보험료(세금)를 걷어서 설계사와 임직원(공무원)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남은 돈으로 계약자(국민)에게 보장(공공서비스)을 제공합니다. 보험료는 잘도 걷어가면서 보험혜택을 한번도 못 받았다고 볼멘 소리 하는 사람이나, 세금은 꼬박꼬박 내는데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이나 같은 입장인 거죠. 그러다가 한번이라도 보험금을 받아본 사람은 보험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119의 도움을 받아본 사람은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거짓으로 보험금을 타내려는 보험사기꾼들이나 허위로 국가의 정책자금, 속칭 눈먼 돈을 빼먹으려는 인간들이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이 정도면 꽤 잘 들어맞는 대칭구도 아닌가요? 가끔 보험료는 싼데 보장은 큰 보험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세금은 적게 내고 국가의 혜택은 많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단언컨대 그런 보험회사, 그런 국가는 없습니다. 혹시 예전에 있었다 해도 지금은 망해서 없습니다. 자기가 낸 것보다 더 많이 받아가려는 건 투기심이거나 도둑놈심보, 거지근성, 이 셋 중에 하나입니다. 보험료건 세금이건 자기가 낸 만큼 받아가는 게 공정하고 상식적이지 않을까요?
자, 이제 세금을 국가에 내는 보험료라고 생각해보죠. 그러면 세금에 대한 심리적 균형점은 보험료가 싸냐 비싸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경우의 수는 딱 세가지입니다.
첫째, 보험료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경우는 이미 심리적 균형점을 찾았습니다. 더 이상 균형을 찾아갈 이유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둘째, 보험료가 싸다고 생각하시나요? 별로 없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보험료를 더 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현재의 소득에서 보험료를 더 내라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내라는 말입니다. 받는 혜택에 비해 보험료가 싸다고 느끼는 사람은 사실 심리적으로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심리적 균형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금을 많이 내기 위해서 소득을 높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 소득을 줄이라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입니다. 여러분의 소득이 높아지면 일단 여러분에게 좋고, 그에 따라 세금을 많이 내면 국가도 좋고, 또 여러분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부채의식을 털고 심리적 균형점을 향해 갈 수 있으니 일석삼조인 셈이죠. 어쨌거나 돈 많이 벌라는데 발끈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셋째, 보험료가 비싸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대부분 이럴 거라 예상되는데 이 경우엔 스스로의 가치, 즉 내 몸값이 다른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난 소중하니까, 내 가족은 소중하니까, 내 재산은 소중하니까 그걸 지키기 위한 비용인 보험료를 다른 사람보다 좀더 많이 낸다는 생각 말입니다. 아니면 자기 생각에 적정수준 이상으로 많이 낸 보험료는 기부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자기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보험료를 대신 내줬다고 생각해도 좋고, 그 사람들에게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배려했다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타인에 대한 긍휼심을 가질 수 있고, 비싸게 느껴지는 보험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혹시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필자의 말은 국민으로서 세금이 많건 적건 불만 갖지 말고 무조건 잘 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금이 많거나 적어서 마음이 불편하면 심리적 균형점을 찾아서 마음의 불편을 해소하자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와는 별개로 세금수준이 적당한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계속되어야 하고, 특히 세금이 제대로 걷히고 있는지, 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와 비판 역시 국민에 의해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필자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선행이나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것처럼 세금을 많이 낸 사람들도 존경받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게 그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간접적인 기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낸 세금이 국가의 예산을 살찌우고,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의 크기를 키우는 데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국가유공자에 준해서 대우하고 존경해도 된다고 봅니다. 차제에 납세자의 날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행사를 TV로 생중계하고, 성실납세자와 더불어 최다납세자도 순위를 매겨 시상하고, 신문방송에서 대서특필로 보도한다면 수상자들도 뿌듯하고 국민들도 그들을 칭송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38기동대에 쫓기는 사람들이 자진해서 세금을 내려고 할 지도 모릅니다. 필자가 상상의 나래를 너무 심하게 펼치고 있나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금은 적게 낼수록, 안 낼수록 좋다는 분위기가 만연해있고, 존경받아야 할 수많은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들이 탈루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이 시대에, 한번쯤은 깊이 논의해봐야 할 화두가 아닐까 조심스레 던져봅니다.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세금을 많이 낸 공로로 국민들로부터 대우받고 존경받았다면 어땠을까요? 총리가 무슨 말을 했건 간에 프랑스 국적을 버리는 일은 아마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