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당신 앞에 펼쳐진 노마드의 세상

작성자
홍성범
등록일
2006/02/13
조회수
8519

당신 앞에 펼쳐진 노마드의 세상

 

‘노마드(Nomad)’란 말이 요즘 화두로 떠오른 것이 벌써 꽤 시간이 지난 듯하다. 이 스펠링조차 생소한 단어가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21세기는 바로 이 노마드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어지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노마드라는 말은 ‘유목민’을 의미한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말 타고 휘젓던 바로 그들-어쩌면 고구려의 핏줄을 온몸에 휘감고 바람에 맞서 말 달렸을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 이 노마드이다.

징기즈칸이 중국을 통일할 때 그의 주력이었던 핵심 부대는 바로 기마병이었다. 징기즈칸은 보병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전쟁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버린 위대한 인물이다. 진을 이루고 힘싸움을 주로 하던 재래 전쟁의 흐름을, 집중과 속도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돌파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보보스(BOBOS)라는 말이 세상에 등장할 때만 해도 세상은 여전히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가 주를 이루는 이른바 ‘월급쟁이의 시대’였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인 찰스 핸디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도 ‘벼룩’의 시대는 요원한 ‘코끼리’의 시대였다고 할까? 그런데 다니엘 핑크(그는 앨 고어 부통령의 보좌관으로 그의 연설문을 작성하며 백악관에서 승승장구하던 엘리트였다.

 

그러나 어느 날 꽉 짜여진 조직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이후 그는 스스로 경영 컨설턴트,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 등의 기고가 등 스스로 프리 에이전트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가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라고 일갈한 이래 분위기가 바뀌더니, 이젠 잡 노마드(Job Nomad),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방에 깔린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노마드의 속성이 무엇이길래 세상이 그들의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노마드를 규정짓는 두 가지 속성은 바로 자유로운 ‘이동’과 ‘속도’이다.

 당신이 아침에 집을 나설 때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밤새 내린 눈을 털어내면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휴대전화를 핸즈프리 거치대에 연결한다. 지난 밤 서재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작성한 리포트를 다시 생각하고, 오늘 있을 회의에 참석할 참석자들의 명단 중 누락된 자는 없는 지 PDA를 통해 확인한 후, 한번 더 확인 메일을 발송한다.

 이젠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당신은 그 어느 누구와도 접촉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의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당신이 집에 있든지, 휴가지에 있든지 혹은 사무실이든지 당신이 원하는 시간에 그 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당신을 원하는 누군가 역시 그가 원하는 대로 당신과 통화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과거 전화번호를 찍어놓고 마냥 기다려야 했던 비퍼(삐삐)의 시대는 이제 박물관에 들어간 지 오래다. 당신의 휴대전화가 당신과의 연락을 즉각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난 기다릴 필요도 없고, 기다려 줄 인내심도 없다.

 당신에게 전화가 와도 마찬가지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라고 물어보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다.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누가 전화했다는 것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30분이 넘어 배달되는 피자는 돈도 받지 않겠단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에게 점점 더 인내심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마드 세상의 전략으로 군림할 자유로운 이동과 속도는 이제 세상을 규정하는 지배 원리가 되었다. 배우 한석규가 “중요한 순간에는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이제 우리는 휴대전화를 잠시라도 꺼 둘 수가 없다. 화장실에 가면서도 휴대전화를 챙기는 우리는 이미 ‘휴대전화 증후군’에 걸린 중병 환자들이다. 은행 가는 시간도 아까워 휴대전화에 e-banking 서비스를 신청하고, E-mail의 답장을 기다리기 힘들어 수신 확인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초를 잰다.

 이런 현상이 어찌 개인뿐이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자사 상품의 반응을 설문으로 조사하는 것도 못 기다리겠단다. 인터넷을 열어놓고 24시간 고객과 접촉하기를 원한다. 게시판을 주목하고, 사용 후기가 올라오기를 기대한다.

고객이나 기업이나 스스로 기대한 즉각적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무한으로 펼쳐진 다른 대안을 향해 고개를 돌려 버린다.

21세기는 ‘속도의 시대’이다. 걸어가선 안 된다. 말을 타라.
전략이나 계획은 말을 타고 가면서 수정하라.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당신에게 펼쳐진 노마드의 세상에 당신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몸집을 가볍게 하는 것, 꼭 필요한 것만 챙기는 용기, 그리고 잘 달릴 수 있는 튼튼한 말을 준비해야 한다.

기다리고 있으면 패배한다. 찾아가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