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원기소와 왕다마...그리고 신년 재테크 설계

작성자
구재성
등록일
2004/01/14
조회수
9154

남들도 그렇듯,  해가 바뀌면서 지난 해를 반추해 보다가 오바해 버려서 너무 지나간 과거까지 가버렸다.

터팬의 유년시절이었던 1970년대.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에서 격동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싶다. 어리지만 철딱서니 없던(?) 터팬의 눈에 비춘 건, 월남전 참전, 초고속경제성장, 숙부님까지지 파견나가셨던 중동건설 붐, 고속도로와 전철개통, 정희 행님의 피살 등...  

 

 그래도 머니머니 해두 터팬은 '원기소' 먹고 지냈던 것과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장만했던 일이 가장 기억난다.    당시 터팬의 집은 생긴 것과는 달리 유복하질 못했다.  '먹는게 남는 거고, 사내자식은 밥심으루 사는 것' 이라는 울엄니의 확고한 신념 덕분에 다른 것은 몰라도 밥하고 김치는 징하게 먹었다. 

  

특히  3남매 중 막내인 터팬은 골격이 워낙 커서 어린 나이에도 밥 두사발은 거뜬히 먹었던 거 같다.   머슴 삼돌이처럼  무식하게 퍼먹는 막딩이 터팬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엄니의 시선이 마치 칭찬일 거라 착각하면서 말이다.    군사독재 시절의 히트상품이자 청소년을 위한 만병통치영양제인 '원기소'를 아시는가?

 

 배가 아프건, 감기에 걸리건, 타박상을 입어도 오로지 그것만 먹었다.  엄니의 사랑과 소독약냄새와 건빵맛이 버무려진 유일한 영양제였던 '원기소'마저도 곗돈 탈때와 학교에서 상탈 때만 어쩌다가 배급받아서 먹었다.

 2홉들이 소주병보다도 큰 하얀 플라스틱통에 담긴 아스피린 크기의 '원기소과자'를 매일 열댓개씩 먹고 자라서 그런지 터팬은 그리 잔병없이 잘 자랐다.   

 

 경기도 북부의 美軍들이 드글드글한 小도시에서 넉넉치 못한 집안의 형편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터팬은 유치원가는 넘들을 부러워하고, 핫도그 사먹는 넘, 왕다마(구슬)로 노는 넘들을 졸졸 따라다녔다.   들키면 엄니한테 얻어터지는거 알면서도 누나와 형이 쓰던 학용품이며 책을 얼라들의 왕다마랑 스와핑도 하고, 강냉이도 사먹었다. 

 

지금도 이런 불우이웃이 있을까 싶지만, 부모님은 사랑스런 막둥이가 그리도 좋아하던 최소한의 즐거움도 외면한 채 악착같이 모았던 듯 싶다.     당시에 무슨 투자정보가 있었겠는가? 모네타 같은 금융포탈이 있어서 이런 동호회를 가입하겠는가? 아니면 인터넷뱅킹으로 적금,송금,자동이체를 편하게 했겠는가?   

 

 한달에 한번씩 예금이라도 할라치면,  한창 '다마치기'로 끗발세우던 터팬의 기분도 아랑곳않고 모지락스럽게 잡아끄시던 엄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청량리의 '한국주택은행'이라는 곳을 댕겨왔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살다가 터팬이 열살이 채 안되서 기어이 스무평 남짓한 허름한 슬라브집을 샀었다. 비록 푸세식화장실과 연탄아궁이에 쩍쩍 벽에 금간 집이었지만,  집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가 뭔지 모르던 당시의 터팬의 시선에서도 인간승리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 시대에선 재테크하기가 무척 쉽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실패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시도조차 안하려고 하며, 미래의 불확실한 삶에 대해 비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애써 잊고 사는 듯 하다. 

터팬이 보기에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분들이 금연, 다이어트,자격증따기 등과 더불어 [부자되기] 등의 목표를 세우는 것 같다.  분명 바람직한 목표라고 치켜세우고 싶다.

 

 그런데 왜 부자되기 목표를 세웠는지 궁금하다. 부자되려는 동기가 무척 다양할 테지만, 부자되서 老年에하고싶은 일 다하고 사는 것이 목표라면 그것만은 말리고 싶다. 왜냐면 도중하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평지라도 가려는 의지와 평지에서 욕심내어 등산이라도 가볼까? 하는 의지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아웃사이더들은 죽어라 재테크 해도 하고싶은 일 다하고 살만큼 모으기 힘들다.    차라리 비참한 말년에 대비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겠다는 목표가 더욱 성공확률이 높을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20~30년이 지나 경제활동이 곤란해 질 즈음 얼마정도 공작금이 있어야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수 있을까?  기대수명이 80세라고 가정했을 때, 지금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곱게 늙어죽으려면 지금 버는 것의 절반은 저축해야 한다는 단순무식한 결론이 도출된다.  

 

 20~30년 동안 소득의  절반을 모아서 노후 20~30 동안 지금처럼 살려면 당연한 산술 아닌가?  

수많은 변수는 배제하고 라도 이 정도는 벌고 이정도는 저축해야 한다는 현실...  이 현실 인식이 재테크 실천성공율을 더 높이지 않을까?  

 

 미래를 장미빛으로 기대하고픈 분들께는 떠들어봐야 설득력 없겠지만, 우리 아웃사이더들이라도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삶을 상상해보자. 

 

우리 인간이 동식물하고 다른 점이 바로 상상을 할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 수준의 삶의 질이라도 유지하려면 주저하지말고 당장 보다 구체적이고 꾸준히 실천가능한 프로젝트를 설계해야 한다.   결국 말년에 곱게 살다 가려면 지금부터 소득의 절반을 저축해라~ 라는 진부한 결론이 나와버렸지만,  이런 결론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각자가 꿈꾸는 삶이 있을 테니 알아서들 잘 설계하실 거라 믿는다.   

 

 기왕 할바엔 좀더 현실적이고 실천가능한 목표를 세우시길 바라고, 과거의 힘들었던 여러분들의 위기도 잊지말 것이며, 우리 부모님 세대의 모진 시련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인간재테커]가 되시길 바라는 신년벽두의 터팬의 소망이다.    원기소와 왕다마를 추억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