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재테크 잘못해서 이렇게 망했다!!!(5)

작성자
장임택
등록일
2005/03/14
조회수
35379

보증이야기-2-

 

세상에서 하기도 어렵고 들어주기도 어려운 것이 보증부탁이다.  아는 사람 누구누구가 보증 잘못서서 피해를 봤다더라 하는 이야기쯤은 적어도 하나 이상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혹은 주위사람들에게 덕담하듯 주고받는 이야기의 단골손님이 ‘보증서지 말라’일 정도니 사람들 대부분이 보증에 대해 두려움이라 할 만큼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보증을 동네 개보듯 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증권사 직원들이다. 워낙 돌아가는 돈 보는것이 일상이고, 또 그만큼 수입도 괜찮아서 인지 그들의 의식은 일반인들과는 차이가 많았다.

 

보증으로라도 기회를 적극 이용해 보려는 그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결말이 꿈을 꾸듯 아름답고 행복한 장면만은 아니기에 거듭 보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다.

 

일전에도 서술했듯이 증권사에서는 거미줄처럼 얽힌 보증관계가 보편적이라 할 만큼 당연시 되고 있었다. 물론 그 위험성을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기회를 잡으려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이리저리 관계를 엮다보니 거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 현실적인 필요성이라는 것인데, 알고 보면 그 ‘필요성’이란 현실적 요구가 아닌 이상과 야망의 유혹에 대한 굴복에 가깝다.

 

필자의 목격담은 이러하다.

필자의 **증권 입사동기이자 대학2년 후배였던 C씨는 철저한 자기관리에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지점 내에서 인정받는 동료였다. 그는 입사 전 결혼하여 예쁜 딸까지 하나 두고있던 터라 매사 누구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또한 증권사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직업으로서만 매매에 임하여 자신은 월급쟁이로서만 성실하게 인생을 설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증권사라는 환경은 욕심과 욕망이 자라기 쉽고, 또 늘 산재해 있는 곳이다. 시장을 가만히 보고만 있자하니 머릿속은 돈 들어올 궁리만 가득한데, 월급쟁이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지고, 그래서 조심스레 작은 욕심을 부려보기 시작하면서 일은 시작되었다.

 

C씨는 처음 먹었던 생각을 바꾸어 저축+투자의 개념으로 조심스럽게 매매를 시작하였다. 94년 입사해서 종합지수 1,100P 돌파를 직접 목격하고, 개열종목에서 현재와 같은 대박(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을 지켜보던 C씨로서는 매매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소소한 이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안가 점차 투자금액이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액수로 불어나기에 이르렀다. C씨의 과감한 선택에는 단순한 욕심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과열된 투자열기도 한 몫을 하였다.

 

문제는 투자금액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직원들끼리 맞보증을 선 것이다.  당시 증권사 직원들은 보통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다른 직장인들이 보증에 대한 이야기를 꺼려하는 것과는 달리 증권사에서는 쉽게 보증을 부탁하고 응해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그렇게 만들어낸 돈으로 다시 증권시장에 투자( 일명「모찌」)를 하고, 그런식의 투자가 계속되는 이상 보증의 고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게 투자액을 늘려가며 C씨는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직원간의 맞보증을 통해 투자원금을 억단위로 높힌 것은 물론, 얻은 이익을 흥청망청 써버리며 그 답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좋은 날은 그리 길지 않았다. 증시가 하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1994년 11월. 1,100P를 정점으로 증시는 4년간의 침체기에 들게 되었고, 급기야 1997년 10월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게 된다. IMF로 모든 국민이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그 중에서도 증권업에 종사하는 증권맨들은 어느때보다 암울하고 처절한 시간속에 갖혀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증권맨들의 자살, 행방불명 소식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이자 두려움이었다.

 

C씨가 자주 사용한 매매기법은 신용거래와 미수거래로 처음엔 꽤 괜찮은 이익을 남겨주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큰 손실을 불러오기도 했다. 특히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던 당시 시장 상황에서는 더욱 많은 위험을 내포할 수 밖에 없었다.

 

C씨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본인 구좌는 이미 신용거래, 미수거래로 인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던 찰나, 지뢰가 터진 것이다. 맞보증을 섰던 직원들이 하나둘 눈앞에서 사라지고 여기저기 사람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쇄부도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한 명이 사라지면 7, 8명이 거리로 나 앉는 사태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본인이 주식으로 돈을 잃었다면 당사자의 귀책사유로 치부될 뿐이지만, 보증인의 금액까지 떠안는 사태는 말 그대로 우는 아이 뺨때리는 식이다.

 

문제는 눈앞에서 사라진 돈 만이 아니었다. 당시 구조조정을 해야했던 회사 입장에서는 이 일이 사직권고의 구실이 되었기 때문에 사건은 대부분 ‘실직’으로 마무리 되어지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많은 가장의 실직되었고,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던 적도 많았다.

 

그렇게 6년이 흐르고, 최근에 필자는 C씨를 만날 수 있었다. 기쁜소식이 있다는 이야기에, 오랜만에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C씨는 그 사건이 있은 후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자살을 결심할 만큼 어두웠던 시간들, 이혼직전에 있었던 자신의 가정이야기, 급여압류, 권고사직 등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할 고통의 시간들을 조용히 필자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는 기쁨과 즐거움 그 자체였다. 캄캄한 어둠속을 인내로서 버틴 그는 더 이상 ‘신용불량자’도 아니었고 ‘급여압류대상자’도 아니었다. 2004년 12월부로 그 모든 것에서 탈출한 그는 이미 새 삶을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거리로 나앉았지만 그는 자신과 가정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많던 빚을 천천히 조금씩 덜어내면서 다시 일어설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참고 인내해온 시간들이었다. 현재 그가 가진 부채는 “0”이다.

 

그는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었다. 필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밤이 새도록 함께 울고 웃으며 진하게 소주를 들이켰다. 필자는 그날 C씨의 표정에서 10년 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상기된 젊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보증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꺼려하는 것은 그로인해 고통받은 사람이 그 만큼 많기 때문이다.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때에 남의 짐까지 떠안고 억울한 일 당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C씨의 지나간 고통은 보증이 안겨준 짐의 무게였다.

 

보증이라면 힘닿는 데까지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것도 다 사람사는 일일 뿐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절친한 친구, 살가운 동료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단호히 외면하는 것이 좋다. 혹, 이미 그 수렁에 빠진 분들이 있다면 파이팅을 외쳐드리고 싶다.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늦더라도 희망을 향해 걸어갔으면 한다. 필자의 동료 C씨가 그러했듯이 여러분도 깨끗이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보증은 무서운 것이다. 무서운 것이니 꼭 피해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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