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일본의 불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2

작성자
조혜경
등록일
2004/11/15
조회수
8662

위험이란 늘 대비를 해두어야 한다.

 

IMF 당시를 회상해 보면 새로운 사회 현상이 나타났었습니다.

노숙자라는 홈리스들의 존재였습니다. 당시 용산 역 근처에 있던 한 시민단체의 위탁 교육 관계로 역 광장을 지나다 무료 급식을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있기도 하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떠들기도 하고 때로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신문지 한 장을 덮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무서웠으나 점차 그들이 측은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들을 무능력자로 낙인을 찍어버릴 수도 있지만 스스로가 원해서 그리 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거래처의 부도로 얼떨결에 거리로 나앉아버린 중소기업 사장님이나 근로자들 같은 분들은 억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책임은 일부 있다는 거죠. 조금이라도 앞날을 예상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위험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도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이란 불시에 찾아오는 것이기에 대비해두려 노력을 하는 것이 늘 중요한 것인데요.


현재 많은 분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사오정과 오륙도에 이어 이태백까지 지표 경기는 좋은데 반해 내수침체로 경기가 양극화되어 서민 경제가 피폐해지다보니 우리 사회 전반에 불안이 드리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일본의 10 년 불황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일겁니다. 일본과 우리의 경기 침체는 근본 원인은 다르지만 부동산의 상승 투자와 내수의 부진으로 인한 저금리 등이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일본의 지가 폭락 등의 모습에서 불안감이 한층 증폭되기도 합니다. 긍정론자들은 "우리는 일본과는 다르다"고 하기도 하고 비관론자 혹은 냉소주의자들은 "우리도 일본처럼 되겠지"라고 합니다.

 

일본의 불황은 알기 위해서는 섣부른 예단에 앞서 그 배경부터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 부시 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을 하자 미국의 경상수지 악화 등으로 인해 약달러 정책을 쓸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중국이 환율 변동 폭을 확대하겠다고 하자 동아시아권의 통화가치가 빠르게 상승을 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왜 갑자기 일본의 불황을 이야기하면서 환율이야기가 나왔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 이유는 일본의 잃어버린 10 년을 이해하시려면 우선 환율의 속성을 이해하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율의 속성이란 간단하게 정의하면 기본적으로 제로섬으로 시이소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느 나라의 화폐 가치가 절상된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화폐 가치가 빠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1985년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선진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달러화 대비하여 엔화를 절상시키기로 합의를 하게 되는데, 장소의 이름을 따서 플라자합의라고 합니다.


왜 이런 합의를 하게 되었을까요?


그 배경은 한참 거슬러 올라갑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급성장을 하였고 그 영향력이 커져 달러화는 기축통화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의 여향권이 아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냉장고를 팔았다고 가정을 할 때 아프리카의 화폐나 원화로 값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달러로 환전을 해 거래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기축통화란 전 세계의 무역결제에 쓰이는 통화를 말합니다. )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본은 수도와 모든 공업지대가 파괴되어 미국의 자금을 원조받기도 하는 낙후한 나라였습니다. 당시 1달러는 360엔으로 고정이 되어 있었으니 현재의 수준 정도인 105 엔 정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대략 30 % 수준의 가치이겠죠. 미국 입장에서는 지금 중국의 노동력에 대한 값이 싸다는 인식을 가진 것처럼 일본의 노동력의 값이 싸다고 느껴졌고 섬유나 잡화류 등이 싼값을 타고 미국 시장 내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마치 지금 중국제품들을 조악하다고 여기지만 싼 맛에 팔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에게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 생겼습니다.

한국의 6.25전쟁으로 군수품 등을 팔아 중공업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거기에 장기전의 성격을 보였던 베트남 전까지 일어나게 되자 일본은 중공업에서 경공업에 걸친 산업들이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어 결국은 고성능제품을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국가로 변모를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 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용병으로서 벌어들인 달러가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었던 것과 유사합니다. 전쟁이란 해당 국민들에게는 고통을 주지만 주변국들에겐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덧 ‘Made in Japan’은 조악한 싸구려의 이미지를 벗고 고품질의 대명사가 되어 일본의 하이테크 기술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일본에 달러가 비축되자  당시 오일쇼크를 극복하기 위해 강달러 정책을 구사하여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은 이를 보고 있기에는 배가 너무도 아팠겠죠.


결국 플라자합의를 통해 360엔에 고정된 엔화의 가치를 절상시키기로 합니다. 120엔으로 까지 급격한 엔고가 나타나자 일본의 수출산업은 대 타격을 받았을 거라는 기우를 받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기술력이 최고라는 인정을 받아 환율의 변동과는 상관없이 고가의 우수한 제품으로 인식이 되어 1980년 말에도 여전히 일본은 하이테크제품 수출로 세계 1위를 굳혀가고 있었습니다.


최근의 중국의 고정환율제에 대한 절상 압력을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처럼 미국이 힘에 의한 강압으로 일본 등에게 써먹었던 전례가 있습니다.

 

일본은 지나친 자신감이 바로 부동산 버블의 주요 원인이다.


이로서 일본기업들은 미국을 앞질렀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팽만해졌고 소득의 분배구조가 좋아 중산계층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보통 투자란 자신에게 여유 돈이 있거나 향후도 소득이 증가할 것이란 믿음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편적이기에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일본의 부동산은 엄청난 버블을 연출하게 됩니다. 너도 나도 산다는데 안 오르고 배기겠습니까?

 

또한 엔고를 이용해 일본의 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하와이 등 해외 자산에 대한 투자도 급격하게 늘려 한때는 일본이 하와이를 다 사들이고 있어 일본의 영토가 될 것이란 농담도 있었습니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해외로 빠져 나가는 돈을 막고 부동산의 버블을 잠재우기 위해 급기야는 금리 인상을 단행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두 편 정도로 끝내려 했는데 어떻게 써야 할까 궁리를 하다보니 좀 더 길어 질 것 같습니다.


날이 점차 차가워지는데 모두 건강 주의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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