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하려면 익숙한 것과 결별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익숙해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지요. 만약 우리가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동물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눈이 두개이고, 세개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눈이 2개인 것에 가장 익숙한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대로 변화하고, 그래서 발전한다면,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 조차 물음표를 던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며칠전 때가 때인지라, 신문에서 배낭여행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배낭여행 고수들의 배낭 속을 보여주더군요. 재미있는 것이 때수건이 1위에 올라있었습니다.
순간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대학교 시절 유럽 여행중에 1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때를 박박 밀어야 다음 1주일을 가벼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으니까요. 야경 보는 것을 포기하거나, 너무 피곤한 것을 참으며 룸메이트가 씻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욕실에서 열정적으로 때를 밀어 재꼈습니다.
미국 유학을 갈 때 역시 집에서 쓰던 때수건을 종류별로 챙겨서 갔습니다. 초반에는 “역시한국 사람은 때를 밀어 줘야 해” 하며 열심히 때를 밀었습니다. 하지만,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도저히 때를 밀 수 있는 시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전에 이를 닦은 칫솔이 마르기 전에 다시 이를 닦고 나서야 했던 ‘세시간을 잘까, 때를 밀고 2시간만 잘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지만, 이런 절박함 속에서 때를 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공부나 다른 생각 할 때는 잊었다가, 간단하게 샤워를 하러 들어갈 때면, 때를 못밀어서 곧이어 피부가 쩍쩍 갈라져서 떨어져 나가면 어쩌나 걱정이 되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한달 두달이 지난 후, 나름대로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를 밀지 않아도, 사는 데는 전혀 지장 없으며, 살갗이 쩍쩍 갈라지지도, 사람들에게 악취를 풍기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부에 무리를 주지 않게 되어 더 건강한 피부를 갖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부담감을 벗으니, 그간 때민다고 들인 공과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친구가 직장생활 6년인데 아직도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산다고 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며 적지 않은 연봉과 금전적 혜택을 받으며, 미혼인 그가 왜 그렇게 살고 있을까… 몇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직장에서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차로 출퇴근을 한다고 합니다. 입사초기 집에서 애매한 거리에 있는 사업장으로 차로 출퇴근 하던 것이 버릇이 되어, 훨씬 빠르고, 편리하며, 저렴하기까지 한 지하철은 고려치도 않고, 집을 나서면 아주 ‘익숙하게’ 운전대를 잡게 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또 다른 한 친구는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며 몇해 전 차를 처분을 하고 택시를 타고 다닙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수 있으면 타지만, 택시가 유리한 거리에 있는 직장 때문에 그는 미련없이 택시를 탄다고 합니다. 저녁 약속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주차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고, 때마다 날아오는 보험료, 세금도 없습니다.
주차장에서 걸어 올라가는 거리, 시간 치면, 집에서 길가로 나오는 것과 비슷하니, 절대 어떤 면에서도 손해가 아니라고 합니다. 결산 결과, 택시가 자가용보다 훨씬 저렴하답니다. 모든 면에서 innovator (혁신가) 적인 면을 가진 이 친구는 가장 잘나가던 5년차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고, 이제는 자리를 온전히 잡아 짱짱하게 잘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차를 가지고 다니는 친구가 아주 잘못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누구에게 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범법 행위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본인의 재정상태를 호전시키고 싶다면, 그 친구는 습관적으로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음표를 붙여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늘 야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특별히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는 것이 아님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업무시간에는 한시간 마다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고, 사람들과 이런 저런 잡담하고, 회의시간에는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이런 저런 사족을 붙여서 회의시간을 비능률적으로 이용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회사근처 중국집에서 볶음밥 하나 먹고 들어와서는 세상일 자기가 다하는 사람처럼 열을 올리곤 합니다.
그들은 업무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맡은 일을 다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야근에 익숙해져서, ‘야근을 왜 해야 하는지’, ‘야근을 안 할 방법은 없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때로는 능력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성과가 아닌, 야근에서 찾는 것이 아닐까 하여 딱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몸에 혹이 나면, 그 혹을 떼고 정상적으로 살 수도 있지만, 그 혹을 키우면서 불편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 우리 조직이 안 되는 이유는 잘도 찝어 내면서 본인은 그런 조직의 희생양인양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점이 그렇게 많고, 그걸 그렇게도 잘 아는 사람이 왜 그 회사에 계속 다니느냐?’고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바꾸던가, 무시하던가, 자신만의 해결법이라도 찾아서 헤쳐나가는 것이 맞지, 불평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요.
너무 고착화 되어있고, 지속적이어서, 비정상적이고, 불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해져서 그런 것들을 숙명인양 지고 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계속 되는 야근, 에너지를 잡아먹는 출퇴근 거리, 적성에 맞지 않는 일, 경제적 어려움(돈이 궁하면 돈 벌 일을 할 것이지, 월급 작은 회사에 계속 다니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노력 하나도 안 하면서 월급만 가지고 투덜대는 사람들 많죠…).
구체적으로는 밤마다 잠 안온다면서 마셔대는 카페인 음료, 비효율적 시간 운용, 돈 아낀다고 싼 옷만 입고 다니면서 느끼는 외모 열등감 등은 당장이라도 결별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물론처음첨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것들을 짊어지고 사는 것 보다 지금 당장의 어려움을 감내하는 것이 맞겠지요. 그래야지 변화할 수 있고,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무언가 잘 안되는 것이 있거나, 불만인 것이 있다면, 그것과 연관된 나의 삶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그것들에게 과감히 ‘안녕’을 고한다면, 우리 삶은 훨씬 가볍고, 효율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