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부터 시행되는 퇴직연금제도를 앞두고 벌써부터 보험 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한창이다. 금융회사들은 비싼 호텔을 빌리고 기업체 담당자 등을 초청해 관련 세미나를 잇따라 여는 등 초기 시장 선점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과연 퇴직연금제도가 뭐길래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걸까? 퇴직연금제도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 냉정히 따져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퇴직연금제도란 기존 퇴직금제도와 달리 회사 외부의 금융기관에 퇴직금을 의무적으로 적립하는 제도다. 기존 퇴직금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이 장부상으로만 퇴직금을 쌓아두기 때문에 회사가 망하기라도 하면 근로자는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하지만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 퇴직금이 회사 밖에 적립돼 있기 때문에 회사가 망하더라도 떼일 염려가 거의 없게 된다.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간정산제 등이 도입된 후 퇴직금을 홀라당 찾아서 집을 사거나 자동차 등을 사는 데 써버리고 막상 노후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중도인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후준비에 대한 시작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퇴직연금제도는 근로자 스스로 투자대상을 선택할 수 있고 직장을 옮기더라도 개인퇴직금 계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 물론 퇴직금제도나 퇴직일시금신탁, 퇴직보험 등 기존 제도가 없어지지 않고 당분간 공존하기 때문에 당장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선진 외국의 사례를 볼 때 퇴직연금제도로의 발전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도 세제 개편 등을 통해 퇴직연금제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제도는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구분된다. 확정급여형은 기업이 직접 근로자들의 퇴직금을 투자하는 제도로서 적립금의 운용실적에 따라 기업의 부담이 변동된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지금의 퇴직금처럼 퇴직 급여수준이 확정된다.
반면 확정기여형은 기업이 근로자에게 매년 퇴직금을 정산해서 지급하고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투자하도록 돼 있는 방식이다.
근로자는 퇴직금의 운용 실적에 따라 퇴직 급여 수준이 변동된다. 그러나 DB나 DC중 근로자 입장에서 또는 사용자 입장에서 어떤 제도가 더 유리한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규모나 문화, 경영방침, 노사관계, 복리후생 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근로자의 노후준비에 있어 퇴직연금제도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 수 있을까. 퇴직연금과 국민연금만으로도 노후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하게 마련할 수 있을까? 지난 7월말 노동부가 집계한 국내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32만원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경우 27세쯤 취직을 해서 55세까지 회사를 다닌다고 가정하면 약 28년간 퇴직연금을 적립하게 된다.
확정기여형의 경우 매년 임금상승률이 5%, 투자수익률이 7%라고 가정할 경우 퇴직시 2억7000만원 정도의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탈 수 있으며 이 자금을 연금식으로 나눠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정도 자금으로는 국민연금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노후생활에 상당히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결국 1년에 1개월치 월급을 퇴직연금에 저축한다고 해서 충분한 노후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닌 셈이다.
따라서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된 양 떠들썩 거릴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다만 퇴직연금제도는 우리 국민들이 노후준비를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령화 문제 등으로 노후를 불안해 하면서도 막상은 전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방법을 모르거나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다른 일들에 떠밀려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제도에는 연 1회 이상 사업주가 근로자들에게 투자교육을 실시하도록 법으로 의무화돼 있다. 이는 국민 다수가 퇴직연금 제도를 계기로 합리적인 노후준비 방법을 학습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는 점이다.
우리 근로자들도 그저 남의 일인양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퇴직연금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구체적인 노후준비의 시작으로 삼았으면 한다.
민주영 FPnet 금융컨설팅팀 팀장 watch@fp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