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1990년대 부동산 투자 이야기

작성자
이주호
등록일
2008/03/25
조회수
9605

90년대 초반 개포주공1단지가 부동산 경기 불씨 2008-03-06  [중앙일보조인스랜드]  

 

1989년 4월 1일날 종합주가지수는 1007.77 포인트 정점을 찍고 그후 대세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증시와 부동산 2년 시차상 정확하게 1991년 상반기에 부동산 경기도 대세 하락기에 접어 들었구요.

 

마침 1991년 상반기는 분당신도시 아파트 입주 시점으로 새 아파트로 이사가기 위해 기존 아파트의 매물이 일시적으로 쏟아져 나오니 부동산 수요, 공급의 법칙상 공급이 앞서니 비로소 집값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상반기 분당 아파트 입주

 

1989년 4월 1일 이후 대세 하락하기 시작한 증시는 1992년 8월 21일 종합주가지수 456.59 포인트 최저점을 기록한 후 다시 그해 년말 대선이 있기 몇달전부터 서서히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증시가 1989년 상반기~1992년 상반기까지 햇수로 4년 정도의 조정이 있었는데 대선이라는 호재를 안고 미리 상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1993년 8월 12일엔 김영삼대통령 긴급명령권 발동해 금융실명제를 전격단행했네요. 1992년 하반기부터 증시가 살아나기 시작하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로부터 2년뒤인 1994년 하반기부터는 부동산 시장이 꿈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당시 부동산 경기 진원지는 개포 주공1단지로 기억됩니다. 개포 주공1단지가 부동산 경기의 불씨를 지폈다는 얘기입니다. 이때 재건축대상 아파트가 우리나라 부동산 경기를 주도해 왔는데 IMF 이후 2000년대 초반에도 어김없이 강남 재건축대상 아파트가 국내 부동산 경기를 주도해 왔네요.

 

1994년말부터 강남 재건축대상 아파트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주도한 반면 1995년 1월 26일자 "바닷모래를 사용해 90년과 91년 사이에 건축된 분당등 신도시 일부 아파트에서 기준치 이상의 염분이 검출돼 경기도가 이 기간에 세워진 전체 신도시아파트를 대상으로 염분성분 정밀측정작업에 들어갔다"란 신문기사로 분당신도시 아파트 가격이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분당신도시 아파트는 이때 최저 가격을 형성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1988년 노태우정권 출범때 서해안 일대 개발, 인천국제공항건설 등 대규모 국토개발 정책을 펼쳐서 그런지 김영삼정권에서는 대규모 국토개발사업은 자제하고 준농림지 개발 등 소규모 국토개발 정책을 펼쳤습니다.

 

1995년도엔 강원도 남부 폐광지역의 경제회생과 국내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1995년 12월 29일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강원도의 태백시, 삼척시, 영월군, 정선군 등을 폐광지역 진흥지구로 지정하였습니다.

 

위 특별법으로 인하여 4개 시, 군의 지가 상승이 대단했구요.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엔 부산 해운대구 신시가지 아파트를 대량 분양했는데 그당시 부산 사람들의 인식으론 해운대는 시내에서 너무나 먼 거리이고 시내로 나올려면 교통 체증때문에 분양받기를 기피하여 초기 분양률이 20~30%대로 아주 저조하였습니다.

 

그 당시 서울에서 내려온 대형건설회사 분양직원들 말에 의하면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서 아주 먼 거리인 분당, 일산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아우성이였는데 부산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조건인 해운대 신시가지 아파트를 선착순으로 분양받았으니 부산 사람들은 복에 넘치고 서울 사람들은 참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그 후 해운대는 부산 지하철2호선도 개통되고 또 얼마전 해운대 현대 아이파크가 전국의 이목을 끌 정도로 최고급 주거지로 탈바꿈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부산 사람들이 그렇게 기피하던 해운대구가 오늘날 부산 제1의 주거지로 우뚝 섰네요.

 

1990년대 해운대 신시가지 60평대 아파트 분양가가 1억 8천만원이었는데 현재 매매가 4억 5천만원, 전세가 2억 5천만원을 호가하니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지방이라도 빼어난 입지의 신시가지 아파트는 언젠가는 빛을 발휘하니 그야말로 세월이 약이겠지요란 말이 실감나네요.

 

1992년 8월 21일날 종합주가지수 456.69 포인트 바닥을 찍고 상승하기 시작한 종합주가지수는 1994년 11월 9일 종합주가지수 1145.01 포인트 정점에 도달한 후 다시 대세 하락기에 접어 들었습니다.

 

1992년 8월 21일 다음날 부터 1994년 11월 9일까지 햇수로 3년동안 종합주가지수가 상승했는데 이때를 증시 소싸이클 시기라고 할 수 있고 반도체산업의 호황으로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발달로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의 전신) 주식이 장을 주도한 걸로 알고있습니다.

 

1994년 하반기에 수출 대표주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관련주가 하락 조짐을 보이니 상대적으로 이번엔 부동산 경기가 오기 시작하네요. 정확하게 증시와 부동산 경기 2년 시차입니다.

 

 

증시와 부동산 경기 시차 2년

 

1994년말부터 오기 시작한 부동산 경기 소싸이클이 대충 1996년도까지 이어진 걸로 기억됩니다. 1995년 7월부터 실시키로 한 부동산 실명제로 부동산 경기의 발목을 잡은 측면도 있습니다. 1997년은 대선이 있은 해입니다.

 

1997년 하반기부터는 부동산 경기 대싸이클이 오는 시기였지만 안타깝게도 1997년 11월 21일날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러 통상 10년만에 오는 부동산 경기 대싸이클이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IMF로 인하여 1998년 6월 16일엔 급기야 종합주가지수가 277.37 포인트까지 추락했습니다.

 

처참한 한해였네요.

 

1998년 5월 22일엔 분양화 자율화, 양도세 한시 면제, 토지거래 허가.신고제 폐지, 분양권 전매 한시 허용을 골자로 한 주택경기활성화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려면 정책(활성화대책)을 거스르지 마라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때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은 훗날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IMF가 터진 후 고층아파트의 경우 엘리베이터를 가동 할 수 가 없어 고층까지 걸어가야 하고 기름 보일러를 연탄 보일러로 대체해야 한다는 등 비관적인 말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대통령 서거 이후 IMF로 20여년만에 국가경제 위기가 닥쳤는데 다행히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의 슬기를 모아 IMF 국가비상사태를 헤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의 드라마이며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 위기는 곧 기회다가 되었습니다.

 

증시 전문가들은 2009년쯤 코스피지수가 3000 포인트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3000 포인트를 간다고 가정하면 1998년 6월 종합주가지수가 300 포인트 아래에서 출발하여 2009년쯤 코스피지수가 3000 포인트까지 가게되면 무려 10배 이상 상승하게 되네요.

 

증시와 비례하여 부동산 역시 대단한 가격 상승이 있었고 현재 가격 상승 진행 중에 있습니다. IMF로 인하여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현상만 초래되었네요. 양극화가 해소되는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겠습니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 예측이 어느정도 가능하다고 믿고있으며 이상 1990년대 부동산 투자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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