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부채의 비밀

작성자
하상주
등록일
2008/04/17
조회수
6715

부채와 경기의 관련성

 

부채는 어느 때는 늘어나는 것이 좋고, 어느 때는 줄어들어야만 한다. 부채가 줄어드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부채를 줄인다는 것은 금융기관의 처지에서 보면 대출 잔액을 줄인다는 말이거나 투자를 회수한다는 말이다. 또한 가계의 처지에서 보면 소비를 줄이거나 부채로 투자한 투자자산을 판다는 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자연히 자산의 가격들이 떨어지게 되고, 물가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경제 전반에 힘이 빠지고, 생산활동이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부채가 너무 많이 늘어나면 자산의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가고, 물가도 지나치게 올라간다. 이처럼 경기의 확장과 축소는 부채의 움직임과 연관성이 매우 높다.

 

 

부채가 전혀 없다면?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어떤 공동체에 부채가 전혀 없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사람들은 크든 작든 자신이 저축한 돈으로만 경제활동을 한다. 해가 가면서 새로운 경제 생산물/서비스(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도 이를 사줄 돈이 모자란다. 즉 이런 사회는 경제 활동이 위축되다 소멸되어 버린다.

 

 

부채의 적당한 정도는?

 

과연 부채가 이토록 중요하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럴 정도로 부채가 줄어드는 경우를 겪어보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그 맛의 일부를 외환위기때 보았기는 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희생으로 비교적 쉽게 벗어났다. 그럼 부채는 어느 정도로 늘어나면 좋을까? 여기에 무슨 정답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답을 하라면 매년의 생산 가치보다는 약간 더 높은 정도로 늘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늘어난 생산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고 나머지는 장래의 가치 생산을 위한 투자의 역할을 하면 될 것이다.

 

 

누가 부채를 만들어 내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채는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어떻게 부채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일까? 가장 쉽게는 내가 남에게 돈을 빌려주면 부채가 늘어난다. 금융기관이 나에게 돈을 빌려주면 부채가 늘어난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플라스틱 카드를 내보이니 돈을 일년 뒤에 갚아도 된다고 한다. 한 전자부품 회사가 완성품 회사에게 중간재를 공급했더니만 완성품 업체가 종이 쪽지를 주면서 6개월 뒤에 돈을 주겠다고 한다. 이런 모든 것이 부채를 늘린다. 즉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 부채가 같이 늘어나기 쉽다.

 

뿐만 아니다. 정부도 부채를 늘리고 중앙은행도 부채를 늘린다. 정부는 세금으로 거두어 들이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소비하면 부채를 늘린다. 특히 세금을 줄이고 전쟁을 벌리면 정부 부채는 더 빨리 늘어난다. 참고로 지금 전 세계 정부 부채의 총액은 약 64조달러다. 이중에서 미국과 영국 정부의 부채가 약 3분의 1인 22조 달러에 이른다. 중앙은행 역시 은행이 가지고 있는 국채를 담보로 잡고는 은행에게 대출을 늘린다. 

 

이제 이 모두를 한 곳에 모아보자. 한 나라의 부채가 늘어나면 그 나라의 경제/금융 활동은 활발해진다. 부채가 작동하여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산의 가격이 올라가고, 생산 활동이 늘어나고, 소득이 늘어난다.

 

 

부채는 많을수록 좋은가?

 

부채가 이런 좋은 역할을 한다면 부채가 늘어나면 날수록 좋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느 시기에는 부채 한 단위 증가가 GDP를 한 단위 더 늘렸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보니 GDP 한 단위를 늘리는 데 부채 5단위가 필요해졌다고 하자. 이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숫자로 보면 부채의 잔액이 GDP에 비해서 매우 높아진 것이다. 그 의미로 보면 부채가 생산활동에 기여하는 정도가 매우 낮아진 것이다. 부채가 게을러진 것이다. 아이를 학교에 가라고 보냈더니만 가다가 어디 PC방에서 또래들과 이상한 짓을 하면서 놀고 있는 것이다.

 

이 이상한 짓이란 경제/금융 현상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기본적으로 자원의 배분이 왜곡되고 편중된다. 금융자산의 가격이 올라간다. 빌린 돈으로 시세차익을 위해서 금융자산에 투자하므로 투기가 붙어 있다. 금융자산의 가격이 올라가면 돈은 더욱 금융시장으로 몰린다. 금융시장이 비정상으로 확대된다. 이렇게 시장으로 몰려오는 자금을 보고는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금융상품 생산자들은 이상한 이름을  붙인 새로운 금융상품들을 만들어서 내다판다.

 

 

부채/금융시장/실물경제의 관계

 

금융시장에서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으면 굳이 돈이 실물 시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금융시장에서 번 돈으로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이 부족하면 수입을 하면 된다. 비록 금융시장에서 자산 가격이 올라가도 실물 시장에서는 물가가 올라가지 않을 수도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지금까지 물가의 움직임을 보고 부채가 지나친지 아닌지를 판단해왔던 금융당국은 무엇인가 이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물가로 보아서는 이상이 없다고 말하고 만다. 금융시장의 비대, 새로운 금융상품의 등장은 중앙은행이 금융시장마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많은 경우 금융시장이 소위 발전(?)을 하고 나면 금융위기가 온다.

 

부채는 언제나 반대편에 자산을 동반한다. 그래서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자산의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 한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이다. 자산은 가격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어는 순간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부채는 자산의 가격이 내려간다고 갚아야 할 부채의 총액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금흐름이다. 자산에서 부채의 원리금을 갚을 현금흐름이 나와야 한다. 만약 자산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이 부채의 원리금을 갚기에 부족하다면 부채를 줄이거나 아니면 새로 부채를 늘려서 과거 부채의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 새로운 부채로 과거의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은 바로 자신이 들어갈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땅을 파는 시기다.

 

 

정부 개입으로 부채 파괴를 막을 수 있을까?

 

우스운 것은 부채가 지나치게 늘어날 시기에는 가만히 있던 정부가 여기 저기서 땅을 파는 소리가 들리면 경제를 구한다는 이름 아래 시장에 개입한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빌려주고, 국유화를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필요하면 법을 고쳐 가면서까지 시장에 개입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익은 나의 것이지만 손해는 만약 그것이 큰 것이라면 사회가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면 과연 부채의 파괴에서 오는 손실을 새로운 부채의 증가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가능하다고 말하더라도 그 가능이 나타나는 시기나 현상은 가지가지일 것이다.  손실의 규모에 따라, 손실의 발생 여건에 따라, 그 나라의 금융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여건과 관행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글쓴이 : 하상주 투자교실 대표 하상주  l    http://www.haclass.com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