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Well-dying : 존엄사와 생애말기 설계

작성자
선양규
등록일
2009/07/01
조회수
6103

얼마 전, 대법원에서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도록 하는 판결이 내려지면서 국내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 방식의 존엄사가 시행되었다.

1년 4개월여간  뇌사 상태로 연명치료를 받아온 77세의 할머니에 대한 뉴스는 현재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연명치료 중단의 그 이유가 어떻든, 산소호흡기에 의해 생을 연명하고 계시던 할머니로부터 산소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도록 법원의 판결을 요구한, 지금도 큰 슬픔에 잠겨 있을 가족들에게 우선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존엄사를 보편적으로 허용하는 영국, 소극적으로 용인하는 미국, 일본, 프랑스, 스위스, 판례에서 인정하는 독일, 이탈리아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도 2008년 11월 28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의 ‘존엄사 인정과 인공호흡기 제거’ 판결 및 병원측의 항소 이후 2009년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존엄사 인정 판결이 확정된 이상 존엄사 인정 국가가 되었다.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는 어느 정도 법적,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 적용 기준에 대해서는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을 덜어주고 의료현장에서 더 이상의 혼돈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어느 누구든 할머니와 같은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생애 말기를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설계하는 생애 말기 설계가 필요할 것이다.

 

생애 말기 설계는 본인이 의식 불명으로 의사결정이 힘들 경우 누가 생애 말기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해 미리 계획해 두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하면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두고 그렇게 하기 위해 여러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그러나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대해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루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미리 계획하지 않음으로써 가족들은 당황하게 되고 당사자는 원치 않는 곳에서 원치 않는 치료나 혹은 통증에 시달리며 혹은, 쓸쓸히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생애 말기에 대한 설계를 수림함으로써 본인으로서는 생애 마지막 순간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가족들은 생애 말기에 각종 원치 않는 치료와 처치들로 인해 지치거나 혹은,계획없이 갑작스레 맞이한 죽음 이후의 문제들에 대해 당사자 없이 해결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최근 well-being과 더불어 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과연 어떠한 죽음이 well-dying이 될 것인지, 어떻게 하면 생애 말기에 존엄한 상태를 유지하다 존엄하게 죽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 곧 생애 말기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에 대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좋은 죽음으로 여겨지는 조건은 적당한 나이까지 살다 죽는 것과 무병사, 자식이나 배우자를 먼저 보내지 않고 죽는 것, 자손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죽는 것, 가족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죽는 것, 자손들이 모두 잘 사는 것을 보고 죽는 것, 수면사, 무통사 등을 들고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노인들은 좋은 죽음과는 거리가 먼 극심한 고통이나 부작용 등에 시달리거나 연명치료에 의존하여 죽음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생애 말기에 미리 어떻게 죽음을 맞고자 하는지 설계를 해 두지 않는다면 원치 않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갈등과 고민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생애 말기에 대한 준비, 즉 생애 말기 설계는 크게 주변을 정리하고 유언장을 쓰는 것과 사후 관리 및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주변을 정리하고 유언장을 쓰는 과정에서는 먼저, 가족들이나 의사 등과 함께 생애 말기의 치료에 대한 사항과 기타 사후정리에 관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둘째, 사망선택유언(생애 말기에 어떠한 치료를 받을 것인가에 관해 기록해 둔 서류로써 가족이나 의사가 생명을 연명하기 위한 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방향을 제시해 주는 서류)과 대리위임권자(본인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본인을 대신하여 의료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릴 사람)의 선택을 포함한 생애 말기의 사전의료지시서(생애 말기에 어떠한 의학적 치료를 받기를 원하는지에 관한 사항과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에 놓였을 때 생애말기 치료에 관한 의사결정을 누가 대신할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지시해 둔 서류)를 작성한다. 셋째, 상속 및 재정적인 부분에 관한 사후 계획을 수립한다.

 

사후 관리와 장례설계 부분에서는 장기와 시신 기증 문제와 매장, 납골, 수목장, 공원묘지 등 어떠한 장법을 택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결정을 한다.

 

위와 같은 의사결정과 갖춰야 할 서류들을 갖추고 나면 주변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모든 가족원들에 대한 목록과 금융자산 계좌번호, 보험증권에 관한 정보, 신용카드나 기타 자산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고 이러한 목록들과 준비된 서류를 안전하게 보관함과 동시에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가족원들이 알 수 있도록 준비해 둔다.

또한, 수립된 계획에 변경 사항이 있는지 정기적으로 검토해 보고 변경할 사항이 있으면 변경하도록 한다.

 

생애 말기 설계에서 핵심은 연명선택의 결정권한을 말기 환자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사전의료지시서라고 할 수 있다. 사전의료지시서는 의료에 대한 유언장이며 통상 환자가 정신이 흐려지지 않고 자발적 의사표현이 가능한 상태에서 작성하게 된다.

 

사전의료지시서에는 보통 병이 깊어져 의사표현이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실시하게 될 의료행위들이 나열되어 있어 이 가운데 본인이 원하는 시술을 표시하도록 하여 이에 따라 의료진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자발적 호흡이 불가능하여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실시하는 기관지 삽관과 인공기계호흡을 하지 말 것, 심박수가 감소하고 심장정지가 임박한 상황에서 심장마사지 같은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심장이 정지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할 것, 소변이 나오지 않고 급성신부전이 발생 시 혈액투석을 실시할 것, 그러나 고통이 심한 경우 마약성 진통제를 충분히 써 줄 것 등 임종 상황에서 실시되는 여러 의학적 처치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그것에 대해 환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런 사전 의료지시서는 대만, 미국, 오스트리아 등 이미 많은 나라에서 법제화되어 있다.

이런 제도의 장점은 연명치료에 대한 환자 자신의 결정권을 존중함으로써 치료에 대한 거부의 권한뿐만 아니라 생명유지를 위한 치료선택권과 요청권도 함께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전의료지시서는 다음과 같이 작성 할 수 있다.

ü  앞으로 어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나의 자의적인 의사표시가 불가능해질 경우를 대비해 나의 자의적 희망사항을 맑은 정신 하에 다음과 같은 사전의료지시서를 나의 담당의사와 가족에게 남기니 본인의 소망대로 실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ü  내가 의식이 없어질 상태가 되더라도 인공기계호흡 치료법은 하지 말 것.

ü  내가 암질환에 걸려 항암화학법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이 있더라도 함암치료는 하지 말 것. 이는 항암요법의 효과를 불신해서가 아니고, 내가 고령인 탓임을 이해 줄 것.

ü  그 외 인공 영양법, 혈액투석, 더 침습적인 치료술도 시행하지 말 것.

ü  그러나 탈수와 혈압유지를 위한 수액요법과 통증관리와 생리 기능 유지를 위한 완화의료행위는 계속하기를 희망하며, 임종시 혈압상승제나 심폐소생술은 하지 말 것.

ü  기타 여기에 기술되지 않은 부분은 대한의학회에서 공포하고 보완하고 있는 최근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료윤리지침’에 따라 결정하고 법의 집행인은 나의 이 소망과 권리를 존중하고 지켜주기를 바람.

ü  나의 장례 절차는 가족 중심으로 자택이나 병원에서 조용히 조촐하게 치르게 해 주고 화장이나 매장 또는, 장례 절차 중에 고전음악을 듣도록 해 주면 저승으로 가는 길에 위안과 격려가 될 것으로 소망하고 있음.

ü  나는 나의 사전의료지시서 내용이 누구에 의해서도 변형되지 않기를 원하며, 또한 이 사전의료지시서는 나 자신의 자율적인 선택에 맑은 정신상태에서 그 내용의 의미를 잘 파악한 상태 하에 이뤄진 것임을 밝혀 두며 이에 서명함.

 

사전의료지시서가 작성된 이후에는 복사본을 만들어 의료진과 법적대리위임권자, 가족 등에게 나누어 주고 한 부는 안전한 장소에 잘 보관하고 서류가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가족들에게 알린다.

사전의료지시서는 작성된 이후 본인 의사에 따라 변경할 수 있으며 때때로 작성된 사전의료지시서를 검토해 변경할 사항이 있으면 변경하도록 하고 변경하게 되면 이전에 작성된 사전의료지시서는 모두 폐기하도록 한다. 사전의료지시서가 변경되면 본인 및 증인의 서명이 다시 필요하며, 본사본을 관련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사전의료지시서 내용이 변경되었음을 알린다.

 

요컨데, 생애 말기 설계는 생애 말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설계와 사후관리 및 장례설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며, 생애 말기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생애 말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특히, 의학적 치료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이에 따라 본인이 원하는 바를 담은 사망선택유언과 본인이 의식이 없을 때 대신 의사결정을 내려줄 대리위임권자에 대한 선택의 과정을 포함한다.

 

2005년, 심장마비로 15년째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테리 시아보라는 여성환자가 있었다.

생명 유지 장치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남편은 이 장치를 제거하기를 원했고, 시아보 부모는 강하게 반대했다. 이 문제는 결국 법정으로 까지 갔고, 법정은 시아보가 평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한 시아보는 곧 세상을 떠났다.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확정 판결의 의미는 우리들 모두에게 말기 생애 설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부터 우리에게는 죽음 까지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메트라이프생명 피닉스 MGA 부지점장 선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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