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돌아온 영웅 - iCon 스티브 잡스

작성자
홍성범
등록일
2006/11/21
조회수
8382

대개 영웅들의 서사시에는 일정한 흐름이 존재한다. 그 어떤 영들의 이야기를 들추어 보아도 아래의 큰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1. 고귀한 혈통

2. 기이한 혹은 비정상적 탄생

3. 탁월한 능력

4. 어려서 기아가 되어 죽을 고비에 이름

5. 구출자, 양육자를 만남

6. 자라면서 반복되는 고난의 통과

7. 위기 극복 그리고 승리

8. 위업의 성취

 

인터넷 시대에 웬 때늦은 영웅 서사시냐고 너무 구박하지 않기 바란다. 비록 과학과 디지털이 지배하는, 신화와 관계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듯하지만, 현대인들은 옛날 올림포스 신들과 동거하던 고대 희랍인들보다 훨씬 신화화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당신의 주장의 근거가 무어냐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생이나 조카가 있다면 그의 방문을 열어보라. 그 아이의 벽에 어떤 사진들이 붙어 있는지, 그 아이의 휴대전화 벨 소리에 어떤 곡이 저장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아이의 컴퓨터 바탕 화면에 어떤 그림이 장식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보라. 그것이 ‘동방신기’의 사진이건, ‘슈퍼주니어’의 사진이건, 아니면 이효리이건…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누군가는 그들의 숭배 대상이자, 경외의 대상이 되는 존재, 다시 말해 신(神)과 같은 존재일 테니 말이다. 아폴로는 ‘세븐’이 되었고, 아프로디테는 ‘이효리’가 되어 이미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아이들만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직장인들에게도 그들만의 신이 존재한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왜 잭 웰치(前 GE C.E.O)에 열광하는 걸까? 칼리 피오리나(휴렛 팻커드 C.E.O)를 향한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사모’가 되었든, ‘박사모’가 되었든 정치판에서도 동일한 현상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신화 포화, 영웅 포화의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말로 신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대라는 필자의 주장은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  영웅인가, 폭군인가?

 

오늘 소개하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그를 가리켜 폭군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그를 향해 냉정한 독설가라고 부르고, 또 어떤 이는 분을 못 이기면 울음부터 터뜨리는 어린아이 같다고 그를 평가한다.

 

나 역시 동의한다. 스티브 잡스. 그는 분명 독설가이고 폭군이며, 어린 아이와 같은 맹목적인 면도 갖고 있다. 만약 내가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였다면 꽤나 피곤하고 힘든 직장생활을 감내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막무가내 격인 그의 기분을 견뎌내는 건 아마도 굉장한 인내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최근 들어 그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뀐 듯하다. 사람들은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유머가 넘치고, 동료와 부하직원을 배려하는 자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솔솔 들려오고 있다. 그 동안 자신을 규정해 오던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데, 잡스에게 일어난 최근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젠 어느 정도 나이도 먹었고, 조직 경험도 있고, 그렇기에 천방지축이던 그의 성격이 다소 진중해졌다고 이해해야 하는 걸까?

 

글의 서두에 언급한 ‘영웅의 서사’를 대입해 보면 그의 변화가 어느 정도 이해될 듯하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이 세운 ‘Apple'이라는 제국에서 쫓겨난 충격적인 경험을 가진 그는 그 경험에 걸맞는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플에서 ?i겨나던 순간, 그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며, 그 후 복귀할 때까지 얼마나 와신상담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영웅 서사의 흐름이 그에게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탄생 - 고난 - 성공 - 귀환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의 변화가 미덥지 못하다.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다. 변화한 그를 바라보는 건, 물을 너무 많이 넣고 끓인 라면을 먹는 듯 싱겁기 짝이 없다. 독선과 아집. 바로 그것이야말로 스티브 잡스의 천성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해 아무도 믿지 않던 그의 과대망상이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독선과 아집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런 그의 천재성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일찍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전’과 우주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이는 그의 영웅다움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그의 꿈을 감당하기에 너무도 작은 지구라는 혹성에서 그 꿈을 이루어내고 있다.

잡스는 스스로를 ‘아이콘(iCon)’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에겐 분명 그러한 매력이 철철 넘친다. 오늘 소개하는 책을 통해 그의 과거사와 Apple의 탄생 비화를 더듬는 작업도 즐겁지만, 그보다는 실패를 극복하는 한 인간의 모습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는 그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일 것이다.

 

스콧 피츠제랄드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제2막은 없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2막을 건너 제3막의 문턱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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