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군고구마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지요.

작성자
구재성
등록일
2004/01/30
조회수
5901
구정 전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터팬은 눈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가슴 아픈 추억도 있었거니와, 언젠가부터 세차만 하면 눈이 내려서 김빼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또 눈이 내릴까봐 일부러 세차를 안하고 버티노라면 이 잡것이 터팬을 약 올리자는 것인지 영동 지방만 내리고 여긴 안 내린다.

이번엔 터팬이 이겼다.

이번 겨울 접어들면서 두달 넘도록 세차를 한번도 안했다. (이그.. 드러워라 ^^;;;) 눈이 쌓이면 대걸레로 훑어 내리면서 세차를 하겠다는 오기가 생겨서,  손잡이까지 너무 더러워서 차문을 열기도 싫다는 뭇 백성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버티다 버티다 기어이 많은 눈이 내림으로써 완승을 거둔 것이다. 인간승리다.

참 한심한 터팬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터팬은 고집도 세고 자신의 꼬라지를 잘 안다.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번엔 터팬이 왕년에 군고구마 장사 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1995년 11월 5일. 대학 말년 무렵. K은행 최종 입격통지 전보를 받고 나서 터팬은 맘도 흐뭇해지고 추억꺼리도 남길 겸 해서 남은 한달하고도 달포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로 작정했다.

고민 끝에 나온 아이템이 바로 ‘군고구마장사’ !!

워낙 고구마 처럼 생긴 터팬인데다 팔다 남은 것이 생기더라도 너끈히 먹어치울 자신이 있던지라 별 고민 없이 청계천 황학동에서 20만원에 리어카와 군고구마통 장비일체를 공수했다.

2년여 넘게 ‘추접재테크’ 로 군자금은 넉넉했던 까닭에 별 고민 없이 만만한 후배녀석을 꼬셔서 용돈벌이를 하자며 시작했다.

수원 권선동의 농수산물도매시장에 직접 가서 밤 고구마를 고르고, 다니던 대학교 근처 공사장에서 땔감도 구해서 대문짝만한 푯말도 써 붙이면서 개업을 했다.

그런데 막상 이 비즈니스를 시작하자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당연히 예상했던 동상과 감기도 그렇고, 수익성의 측면에서도 3개 천원에 파는 것이 영 수지가 안 맞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2개만 주자니 야박하게 느껴져서 말년에 인심 잃기도 싫었다. 장사라는 게 생산 원가가 50%가 넘으면 실패라고 본다.

수지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장작이었다.  

공사장 십장으로 뵈는 아저씨한테 리어카에 가득 땔감을 주워담고 10만원을 주기로 했다. 경험이 없던 터팬은 이 땔감 조달을 우습게 본 것이다. 가득 실으면 족히 보름은 넘게 쓸 것이라고 여긴 것이 결정적인 착오였다.

이 사업을 해보신 분은 아실테지만 군고구마를 5~6시간 동안 구우면서 장사를 하려면 장작이 엄청나게 많이 소요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밤새 줄기차게 잘도 타더구먼, 이놈의 장작은 불만 그어대면 어찌나빨리 숯이 되어버리는지 대략 사흘이면 동이 나버린다.
게다가 습기 먹은 것이 많아서 담배연기에도 맛이 가는 터팬이 그 매운 연기에 눈물도 몇 사발은 흘렸다. 장작에 박힌 못에 찔린 검지손꾸락이 엄지발꾸락 처럼 퉁퉁 부은 적도 있었다.

이 장작 문제를 해결 못하면 처음 시도하는 ‘사업’은 실패라는 생각에 초조해져서 장작조달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얼마 전 ‘터팬 시리즈’ 에서 고백했다시피 고시원의 등유까지도 ‘무단전용’ 해서 난방을 해결하던 숭악한 전과자 터팬이 또 다른 시도에 머뭇거릴 까닭이 없다.

매일 장사를 마칠 무렵인 자정이 지나면, 각 대학건물마다 순회공연을 했다. 각 건물 1층에 있는 열람실 의자가 핵심 타겟 이다. 복사실, 강의실 까지도 다 뒤졌다. 버린 종이며 노트,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짓을 완전범죄로 하려면 경비아저씨의 순찰 시간도 파악되어야 한다.
순찰쯤이야 오래 전부터 내공을 쌓아왔던 터팬은 공범만 있으면 그 정도는 스릴만끽 수준이다.

열람실 의자는 무척 굵직한 목재로 만들어져서 서너 개만 작살내서 수거한 책과 노트를 함께 꼬실러 주면 연기도 덜 나고 하룻밤 장사하는데 충분하다. 취업이 확정되면서 그나마 후덕해진 까닭에 힘껏 흔들어봐서 삐걱거리는 놈들만 요절을 낸다.

이렇게 추접스럽게 흑자경영을 지향하였지만, 천벌을 받은 것인지 매출이 시원치 않았다.

한입 베어 물고 와서는 썩었다면서 반품하러 오는 놈이 있질 않나,
왜 우유랑 함께 안 파냐며 시비 거는 놈,
만취해서 겨우 천 원어치 사고서는 혀 꼬부라진 말로 거스름돈 9천원 달라며 땡깡 부리는 진상도 있었다.
이번처럼 눈이라도 내리면 눈을 뭉쳐서 고구마통을 향해 투구연습하는 녀석도 있었다.

차츰 사업이 안정궤도로 진입하려니 뜬금없이 터팬이 떼돈 번다는 소문이 퍼져서 여기저기 동기나 후배 녀석들이 오가며 맨입으로 얻어먹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먼저 취업된 것까지 트집잡아 끝도 없이 갈취를 하려는 것이다.
그 동안 공부한다고, 돈 모은답시고 지덜한테 소홀했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홀라당 벗겨먹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군고구마로 대충 때울라치면 아예 그날 애써 구워놓은 것을 거덜을 내기도 했다. 잔 자갈을 바닥에 깔고 구워서 골고루 잘 익었다나 어쨌다나 추켜세우면서 말이다. -_ㅡ;;;

결국 모든 사업권은 꼬드겼던 후배한테 고스란히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추억만들기’ 를 위해 시작했다고는 해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은 게 하나도 없다.


...... 요즘 2,30대 청춘들 태반이 호구지책으로 단속반의 눈을 피해 동네 외진 곳에서 고구마, 뻥튀기, 군밤, 붕어빵, 오뎅 등 장사 등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개인의 무능이나 의지박약이 아닌 구조적인 실업문제인지라 짠한 마음이 들어서 사먹을 때마다 격려의 멘트를 날려주긴 하지만, 생계가 아닌 추억꺼리로 군고구마 장사를 했던 걸 생각하면 머쓱해진다.

재테크를 해볼 기회조차 없는 그들에 비해서 다행히 우리는 지금 단 몇 푼이라도 저축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닌가?
우리들의 의지와는 달리 다음 달부터 우리가 그 힘든 장사를 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 OutSider 들은 훗날의 풍요로운 삶이 목표가 아닌 힘들어질 삶에 대비하기 위해 재테크를 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가져주길 바란다.  
그래야 좀 더 실천가능한 의지가 생기고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이란 말이다.


터팬은 돈 쓸 때마다 이따금 고구마장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이 돈 벌려면 군고구마 몇 개 팔아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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