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컴맹은 들어봤는데 돈맹은 또 뭘까요? 돈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을 돈맹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싶어서 필자가 생각해낸 신조어입니다…라고 주장하려고 했는데 혹시나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얼마 전부터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단어더군요. 원조라고 주장을 못하게 돼서 개인적으로 좀 아쉽지만 필자의 작명센스가 그리 나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돈맹이란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 ‘경제지식이 부족한 2~30대 젊은 층을 빗댄 신조어’라고 인터넷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정의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2~30대로 한정하지 말고 전 연령대로 확대해서 적용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나이가 어려도 금융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 있고, 나이가 많지만 금융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저축은행 사태에 관련된 기사들을 읽다가 평생 모은 돈을 예금으로 맡겼는데 은행직원의 권유로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는 후순위채로 바꿨다가 몽땅 날리게 됐다고 한탄하는 어떤 할머니의 사연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할머니는 돈맹이셨던 것 같습니다. 이자를 조금 더 준다는 이유만으로 전 재산을 한군데에 몰아넣은 것도 피했어야 했고,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는 상품에 올인(All in)한 것은 더더욱 피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잘못은 경영을 제대로 못하고, BIS 자기자본비율 맞추려고 후순위채를 필요 이상으로 권유한 저축은행에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할머니가 분산투자나 위험회피에 대해서 알고 계셨더라면, 최소한 그런 얘기를 해 줄 사람이 주변에 있었더라면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저축은행 사태가 잘 해결되어서 할머니가 전 재산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서민들을 울리는 이런 악질적인 금융사고는 제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돈맹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42세인 김봉태씨(가명)는 근면성실하고 경제관념이 투철해서 돈관리를 잘하고 있습니다. 소비하고 남는 걸 저축하기보다는 저축하고 남는 걸 소비하는 스타일이고, 각각의 재무목표에 알맞은 금융상품을 선택했고, 위험보장도 잘 되어있고, 투자포트폴리오도 분산과 위험회피가 적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무지식은 평균 이상이고, 집을 살 때마다 꾸준히 가격이 올라주었고, 노후계획도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변에선 모두 김봉태씨에게 비결을 알려달라고 아우성이고 김봉태씨는 내심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만약에 그의 자녀가 돈맹이라면…? 미안한 얘기지만 김봉태씨가 평생 이루어놓은 돈에 대한 것들은 김봉태씨 당대에서 끝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자녀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남겨주더라도 돈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꼬챙이에서 곶감 빼먹듯이 줄줄이 빠져나갑니다. 김봉태씨가 나중에 저승에서 그 꼴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속이 터질까요. 아이고, 저 녀석…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내가 다 쓰고 올 걸…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이 상황은 자녀의 잘못보다는 김봉태씨의 잘못이 더 큽니다. 돈맹탈출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경제/금융에 대한, 돈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제/금융에 대한, 돈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관은 미성년자일 때 거의 형성됩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학비 대주고, 부족한 공부를 사교육으로 채우고, 진학상담하러 다니는 걸로 끝나는 게 결코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인성교육과 경제교육이고, 특히 경제교육은 학교보다는 가정에서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 큽니다. 그래서!!! 아이를 돈맹으로 방치한 김봉태씨의 잘못이 더 크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자녀의 경제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등학생에게 코픽스금리, 펀드의 운용구조, 수쿠크 채권, 금융소득종합과세… 이런 것들을 벌써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특이한 경우도 있습니다. 필자가 아는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인데도 PER이 주가수익비율인 것을 알고 있더군요. 단순히 암기한 게 아니라 그 의미까지 이해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생 중에 저걸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경계열 제외하면 아마 10%도 안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이 글을 보고 집에 가서 자녀에게 PER이 뭔지 아냐고 묻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물어보겠지만 역시나 하는 실망이 돌아올 겁니다.(필자가 실제로 그랬습니다…ㅎㅎ) 어쨌든 자녀의 수준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데 내 아이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도 쉽지 않고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할 지도 고민이 될 겁니다. 찾아보면 청소년 경제교육에 관련된 단체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경제교육전문 비영리단체인 JA Korea(Junior Achievement Korea, www.jakorea.org)의 홈페이지에 있는 학년별 커리큘럼을 참조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필자는 지난해부터 이 단체의 경제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단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의 경제교육을 반드시 커리큘럼대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가 생활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해 보겠습니다. 공감되는 것은 한번 적용해 보시기 바라고 이것들을 응용해서 여러분들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첫째, 정해진 날에 정해진 용돈을 주고 금전출납부를 작성하도록 하세요.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면서 현금흐름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자녀 명의의 계좌를 갖도록 하세요. 자유저축, 적금, 펀드, CMA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용돈의 일정비율을 저축하게 하세요. 저축을 한 후에 소비를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자/수익의 개념과 자산이 불어나는 즐거움을 알게 될 것입니다.
셋째, 용돈이 부족해진 경우에는 대출을 해주세요. 그리고 높은 이자를 받으세요. 다음 번 용돈이 이자 만큼 줄어들면 사채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고 지출을 조절하게 될 것입니다. 한번쯤은 자녀가 파산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파산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요.
넷째, 고가의 물건은 용돈 모은 것으로 사도록 하세요. 재무목표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물건을 소중히 다루게 되고, 부모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돈이 모자란다고 하면 대출을 해주고 역시 높은 이자를 받으세요. 부모가 화수분이 아니란 것을 아이들도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 일주일간의 경제/금융 이슈 중에서 주제를 하나 정하고 주말에 함께 토의를 해보세요. 자녀에게 미리 공부해오도록 하고, 부모도 어렵지 않은 설명을 준비하세요. 처음엔 귀찮고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제법 재미있습니다. 자녀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주제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섯째, 무엇보다 부모 스스로 돈맹에서 탈출하세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돈맹인 부모에게서 돈맹이 아닌 자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지하철 종각역에서 벽에 붙어있는 조그만 글귀를 하나 봤습니다. 내용인즉슨, 이스라엘에 유학을 간 한국사람이 유태인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답니다. 유태인 친구가 마침 돌 즈음한 아들에게 걸음마 연습을 시키고 있었는데, 아이가 다리에 힘을 주자 아이를 잡고 있던 손을 놓더랍니다. 아이가 넘어지려고 하길래 한국사람이 깜짝 놀라서 황급히 아이를 잡았답니다. 손을 놓으면 어떡하냐고 유태인 친구에게 따지듯이 물었더니 그 친구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국이나 이스라엘이나 똑같다’, ‘계속 넘어져봐야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뉘앙스의 말을 했답니다. 아이가 넘어지는 것은 아이에게도, 그것을 보는 부모에게도 가혹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단련이 되어 내 아이가 더욱 강하게 일어나고, 부모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만한 가혹함이 아닐까요?
경제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적당히 가혹한’ 환경을 조성해 주세요.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아이의 경제적 환경이 가혹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이 충분하더라도 아이가 경제적 풍요 속에만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 경제적 풍요만을 경험한 아이는 나중에 경제적 빈곤이 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고 자랄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이가 경제적 빈곤만을 경험하는 것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풍요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질 테니까요. 때로는 경제적 풍요가 있고 때로는 경제적 빈곤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적당히 가혹한’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부족으로 아이가 풍요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도,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잉 때문에 아이가 빈곤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부모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경제교육에는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립심을 키워주라는 말이겠지요? 아이에게 돈을 주지만 말고 돈을 관리하는 법을 가르치세요. 경제적인 자립심이 생길 것이고 돈맹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게 필자가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