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노고단 산장 숙소가 소란스럽다.
공범 : 퍼뜩 인나라. 일마가 앞장서서 해 뜨는 거 보자카드만 날 새부러따 아이가~?
종범 : 느가 일찍 인나서 깨와준다꼬 큰소리 뻥뻥 치드마 여태 자빠져있으믄 우얄낀대?
주범 : (눈 비비며 창 밖을 내다 보더니) 고마 치아라~ 잘 된기라. 날씨가 흐려가꼬 해는 안뜬다카이.
종범 : 이 문디 자슥아. 날씨 흐리다꼬 해가 안 뜨나?
공범 : 글마 믿고 여기까지 온 거부터가 잘못 된기라~ 내사~마 지리산 종주고 뭐꼬 고마 내려갈끼다.
돌팬은 범인 3명일행의 다투는 소리에 짜증스레 단잠을 깨었다.
어느 누가 그랬던가? 지리산에서 멀쩡한 일출을 보려면 三代의 공덕이 쌓여야 한다고…^^
그러고 보니 돌팬은 지리산에서 3박을 하는 동안 일출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지리산에서 뜨건 정동진에서 솟아오르건… 그 태양이 그 SUN이고, ‘오른쪽 궁댕이’나 ‘레프트 히프짝’이나 매 한가지 이거늘 애초부터 일출 관광은 포기했었기에 눈꼽 만큼의 미련도 없었다.
돌팬은 남은 식량이 없어서 역시 초코파이와 사발면으로 아침끼니를 때운 채 하산을 시작했다.
아무리 지리산의 氣를 듬뿍 머금었다고는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돌팬의 네 다리는 도무지 의지대로 제어가 되질 않았다. 1,500여 미터 높이의 노고단에서 화엄사까지 약 20里 가량이 넘어서 정상컨디션에서도 서너 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그 상황에서는 가볍게만 볼 여정이 아니었다.
우리의 다리는 흐물흐물하고 휘청휘청했다. 엄지발가락은 퉁퉁 부어서 계란만 해졌고, 아침부터 마주 오는 등산객마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여겨졌다. 어찌되었건 정오가 다 되어서야 넝마 같은 몸을 이끌고 화엄사에 도착했다.
경내는 무척 크고 고요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지라 多神論자인 터팬과 천주교 신자인 돌배는 경건하게 삼배합장을 하며 사찰 구경을 했다.
어떤 산을 가건 늘 산을 지키는 절간이 있기에 보이는 곳마다 들러 그윽한 향 내음을 맡으면서 이번 여행의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자는 것도 우리의 목표였었다.
국보답게 럭셔리한 분위기의 ‘각황전’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면서 우린 서로 마주보고 씨~익 웃었다. 어제 노고단에 도착할 때와 비스무리한 감동이 다시 밀려들어서였을 것이다.
화엄사 주변에 즐비한 식당 중 제일 컨츄리틱한 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먹었다. 왠지 그런 곳이 진득한 맛과 정성이 배어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식도락가나 여행을 자주 해보신 분들도 입을 모아 말씀하시는 것이 그 점이다. 객지에 나가서 외관 깔끔하고 그럴듯한 메뉴판 늘어놓는 집 치고 제대로 된 음식 내놓은 곳 없다고 말이다.
밥 한 그릇을 추가로 시켜 남은 반찬을 싹싹 비벼먹고서는 배도 부르겠다~ 나라님도 안 부러운 배짱과 벅차 오르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서 구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당시 1989년은 88올림픽의 영향이었는지 그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아무튼 한창 끗발 올리던 버스의 권력자 ‘안내양’이 사라진 지 꽤 오래된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 버스는 우연인지 지역의 전통인지 안내양이 바로 남자였다.
터팬 : (툭툭 치면서) 돌배야~ 이 뻐스 억수로 웃긴다 야. 어떻게 남자가 안내양을 하냐?
돌배 : 이런 무식한 놈!! 가방 끈도 길면서리... 안내양은 여자한테 붙이는 말이구, 저 친구는 ‘안내군’ 이라고 해야 맞는 거지. 안 그래? ^^v
터팬 : 쩝 !! 맞는 말이구먼… -_ㅡ;;
그 여행은 당초의 기대목표를 뛰어넘어 돌팬을 새로 태어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약 혼자 갔다면 결코 완주하지도 못했거니와, 다른 이와 갔더라도 그렇게 맘 편하고 자유로운 스케줄로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리산 여행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돌팬은 게이로 오해될 만큼 어지간한 여행길 마다 자석처럼 붙어 다니면서 끈적끈적한 애증(?)의 관계를 유지했다.
터팬은 재테크에 관심 많은 독자들께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들도 시간이 나시면 굳이 그런 고생스러운 여행을 경험해보시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피하지 말고 다 부딪쳐 보시길 바라고, 너무 지쳐서 한줌의 기운도 없어질 때, 바로 그때 먹은 생각들을 꼭 기록하고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아니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힘들고 괴로운 일이 닥치면 꼭 그때의 일들과 마음가짐들을 여과 없이 기록해 두면 훗날 두고두고 큰 도움이 된다.
터팬은 일기를 썼었기 때문에 당시의 모든 것을 기록해 두었고 그 부분만 돌배에게도 복사해 주었다.
그 일기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여행 직후 돌배는 알 수 없이 묘한 자신감이 생겼는지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마치 고시생처럼 공부를 하더니 기어코 삼수에 성공했다. 돌배야. 그 동안 욕봤다. ^^
물론 터팬도 그 여행을 계기로 사법고시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들었고, Mr.청학동 에게 배운 도인법과 호흡법도 계속 써먹었다.
터팬과 함께 고시생활을 했던 고시원생들은 기억하리라. 새벽이면 강시처럼 벌떡 일어나서 냉수마찰을 하고나서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서는 동틀 무렵까지 앉은 채로 졸던(?) 꼬라지를 말이다 ^^;;
재테크를 하려는 결정적인 이유나 계기가 있을 테지만… 좀더 근본적인 목표의식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지금은 당장 쪼잔하긴 해도 돈을 모으고 불린다는 것은
작게는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의 비참한 인생을 면하고자 함일 테고,
좀더 크게는 경제적인 자유를 획득하고자 함일 테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미래의 삶에 희망을 가진 사람일 것이고, 결국은 행복을 지키고자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무슨 변고인지 이렇든 길고 긴 재테크레이스를 치르노라면 꼭 훼방꾼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반드시 말이다. 그럴 때면 상당수가 이 레이스에서 도중하차 하거나 애초의 굳은 의지가 희석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죽어라 모아놔도 결국 딴넘 좋은 일 하는 거잖아?’
‘에라 모르겠다. 이럴 바엔 그냥 현재를 즐기며 살자. 나중엔 어떻게든 되겠지~’
‘이렇게 가면 처음에 세웠던 10억을 달성 못하는 것 아닐까? 좀 위험하더라도 배팅을 해볼까?”
터팬은 이런 분들 부지기수로 보아왔다. 차라리 너무도 인간적이기까지 한 모습이다. 이럴 때 처음 레이스 시작할 때의 심정을 기록해두었다면 어땠을까? 잃었던 초심을 다시 다독거릴 수 있는 근사한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당해보신 분은 아실 것이다. 인생이란 것이 늘 지금처럼 평탄할 수만도 없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외부의 변수가 많아서 툭하면 가까운 사람들이 목돈을 잡아먹게 하고, 건강을 해치기도 하며, 불의의 사고도 발생하곤 한다.
지금 여러분들이 목표한 재산은 어느 정도인가? 10억인가? 아니면 주말마다 별장까지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것? 해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
이런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라는 것’은 수많은 재테크 전문가들이 자신은 못하면서 남들한테만 부르짖는 명언이다.
굳이 재테크 분야 뿐만이 아니라 사법고시생도, 대기업에서 임원을 목표로 뼈빠지게 일하는 것도 그렇고,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성공을 향해 뒷골 땡기도록 매진하는 모습은 가히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심술통 터팬이 이런 분들에게 딱 한가지 드리고픈 말이 있다.
“그런 목표가 여러분의 삶의 목적인가? 아니면 수단인가?”
“만약 목적이라면 그 목표를 위해서 희생(포기)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해 본적 있는가?
“만약 수단일 뿐이라면 그 수단은 과연 몇 번째로 가치 있는 것인가?”
이번 기회에 이 질문에 대해 조용한 시간을 내어 자문자답해 보시길 바란다.
이 글을 쓰는 터팬의 취지에 동감하신다면 기왕 늦었다고 회피하지만 마시고 이제라도 부디 궤도수정을 하여 어떤 변수가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근본적인 목표를 다시 세워주시기를 바라는 맘 간절하다.
그리고 그때 세운 목표와 마음가짐을 꼭 기록해두자는 것이다.
돌발변수가 많은 재테크레이스에 임해서 이러한 변치 않을 가치를 목표로 세워두고 기록해두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 기록을 반추하면서 그 목적과 수단이 전도됨이 없이 끝내는 원하시는 가치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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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말.
돌배의 권유대로 그 주식을 손절매 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었다.
과연 돌배는 터팬보다는 전문가였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주가는 2조 원짜리 프로젝트에 성공해서 본전을 회복해서 +15%까지 치달았고, 매수추천 보도기사가 연이었다.
회사업무보다는 주식투자에 더 관심을 가져서 회사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도 없이 한껏 고무되어 있던 터라 더욱 신명이 났다.
터팬 : 돌배야~ 과연 냅두길 잘했다. 그치? 너도 제법 이 바닥의 선수가 되었구나.
돌배 : 짜슥. 쑥스럽게~. 그런데 이제 다른 걸로 갈아탈 생각 없냐? 요즘 내가 점 찍어 둔 것이 있는데 조만간 L사와 합병에 성공하면 최소한 두어 배는 오를 것 같다더라.
터팬 : 좌우간 니가 정보가 빠르니까 맘대로 해라. 난 요즘 회사 일이 복잡해져서 더는 신경 못쓰고 너한테 전부 일임할 테니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입맛대로 해봐.
바로 이것이 터팬의 결정적인 惡手가 되었다.
훗날 알게 된 바이지만 돌배는 정말로 자기 입맛대로 한 달에 열 번도 넘는 단기매매를 했다.
증권사 직원들이 할당 받은 거래실적을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상대적으로 큰돈도 아닌 5천 만원 남짓의 돈을 그렇게 주물러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중간중간에 터팬에게 실적을 알려주긴 했지만, 지난 번처럼 50%까지 까먹은 적은 없었기에 잘 알아서 회복 하려니~ 내버려 둔 터팬이 잘못이 제일 크다.
친구인 터팬에게 많은 수익을 올려주려는 욕심이었을까…?
무척 고민을 했던 것 같긴 했지만 머지 않아 그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종목마다 악재가 꼬리를 물었다.
A사는 1/6로 감자가 되고, B사는 수천 억 원의 미수금에 발목을 잡혀 부도가 나질 않나, C사도 노사분규의 후유증으로 대외신인도도 떨어지고 대미수출에 타격을 입어 쫄딱 망해먹을 지경에 이르기도 하고…
도대체 벌어먹는 종목이 한 개도 없었다. 터팬도 중간에 그 내막을 조회하여 알았지만 도저히 손을 써 볼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한달 하고도 달포 만에 5천5백 만원은 2백 몇십만원만 남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돌배는 터팬의 자금말고도 다른 고객자산관리에 대한 배임책임을 지게 되어 면직이 되었고 가족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잠적까지 했다.
몇 주 뒤에 미국에서 날라온 돌배의 엽서...
무조건 미안하다는 말과 십 수년간의 우정을 변변치 못한 ‘돈’이라는 놈 때문에 잃게 되어 면목이 없다~ 라는 짧은 내용이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가족들과 함께 이민을 갔는데 몇 억의 고객 수탁자금을 횡령까지 했다고도 했다.
한동안 넋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종자돈으로 1억을 채워 번듯한 집을 장만하리라는 꿈이 깨진 것 정도는 어찌 견뎌낼 수 있었다.
그 후유증이 더욱 힘들었는데…
한창 사귀던 그녀도 떠나고, 칙칙한 1,400만원 짜리 지하단칸방 생활을 벗어날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새로 옮긴 회사도 어려워져서 또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 지경이 된 것이었다.
10년 전 지리산에서의 그 고단함을 함께 나누던 돌배가 그렇게 허무하게 망가질 줄도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돈을 잃은 것도 안타까웠지만, 철석 같던 믿음이 그런 식으로 부서진다는 것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터팬은 그 돈에 너무 큰 미련을 가졌던 듯 했다.
집장만도 친구도 결혼도 따지고 보면 그 돈을 성공적으로 불렸더라면 전부 잃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돈이 없다고 그들마저 잃어야 했던 당시의 환경이 저주스러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그 이후로 터팬은 돈에 대한 철학을 하나씩 다져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여태껏 터팬스토리에 옮겼던 것들이다.
1. 돈보다 더 소중한 많은 것들에 우선 가치를 두겠다.
2. 잘 벌기에 앞서 잘 쓰는 법부터 배우겠다.
3. 미래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돈을 모으되, 주변과 함께 하는 행복이 더 중요하다.
라는 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