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셋 모옴(Somerset Maugham)의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가 세상에 나온 시기는 1915년이다. 작가 서머셋 모옴은 글을 통해 자신의 경험담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필립 케어리가 온갖 풍상에 시달리고 집착증이 강한 술집 여자에 빠지는 등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마침내는 안온한 ‘가정’을 꾸리고 안정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의 중간 중간에 주식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서머셋 모옴은 의사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식시장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아마 그 역시 주식투자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 필립 케어리는 주식중개인 메컬리스트의 말을 믿고 남아프리카의 광산회사 주식을 샀다가 600파운드 이상을 잃는다. 당시의 600파운드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다. 소설 속 필립 케어리가 의사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학비 걱정을 하면서 ‘최소한 1년에 학비와 생활비를 합해 100파운드는 있어야 할 텐데’라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1년 학비와 생활비가 100파운드로 족했으니, 600파운드는 무려 6년간의 학비와 생활비에 해당하는 거금인 셈이다.
필립 케어리는 우연하게 술집에서 주식중개인 메컬리스트와 어울리게 되고, 그의 권고로 주식에 투자한다. 항상 그렇듯 첫 거래는 성공적이어서 그는 하루 만에 30파운드라는 거금을 얻게 된다. 하지만 두번째 거래에서 그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는데, 그 거래에서 자신의 전 재산인 600파운드를 몽땅 날리고 만다.
소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필립 케어리는 주식투자로 손해 보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는 첫 거래에서 단 하루 만에 30파운드의 수익을 얻자 자신감이 붙었고, 자신에게 이러한 주식투자의 세계를 알려준 주식중개인 메컬리스트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래서 메컬리스트가 ‘비밀정보’라고 일러준 대로 그 광산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고 덜컥 많은 돈을 투자한다. 지난번에 200파운드로 30파운드의 이익을 얻었으니 이번에 600파운드를 투자하면 더 많은 돈을 ‘당연히’ 벌 것으로 생각하고 광산회사 주식을 샀는데, 때마침 발발한 영국과 남아프리카의 전쟁으로 광산회사가 망하고, 주식은 휴지조각으로 바뀐다.
지금부터 90여 년 전의 다소 케케묵은 이야기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절묘하게도 현실의 사람들과 많이 닮아 있다. 심지어 주식투자로 실패하는 이유까지 정확히 빼다 박았다. 첫째, 필립 케어리는 메컬리스트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가 쫄딱 망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증권사 직원이 추천하는 종목을 무조건 신뢰했다가 실패의 쓴 잔을 마신 셈이다.
둘째, 메컬리스트는 필립 케어리에게 “이것은 절대 비밀인데”라고 말하며 광산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라고 권한다. 정보로 흥한 자, 정보로 망하는 법이다.
셋째, 필립 케어리는 자신의 전 재산 600파운드를 주식투자로 날린 후, 지극히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몰빵’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일인지를…….
이 책을 읽고 있는 주식시장의 ‘선수’들에게 굳이 소설의 교훈을 시시콜콜 일깨울 생각은 없다. 그건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다만, 소설 속에 나오는 이 대목만은 표현이 너무나 멋져서 억지로라도 일러주고 싶다. 필립 케어리가 주식투자로 전 재산을 몽땅 날리고는 생활비가 없어서 전전긍긍할 때, 그가 독백처럼 되뇐 한 줄의 대사는 지금도 유명한 문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돈은 제6감과 같아서, 그것이 없으면 다른 감각을 완전하게 이용할 수 없다.”
필립 케어리 식으로 말한다면 결국 우리는 다른 감각은 물론이고, 6감을 더 얻으려고 오늘도 주식 모니터를 눈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