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개인정보의 유출 또는 오남용 등으로 인한 국민 피해를 방지하고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지난 9월 30일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하였다. 개인정보보호법의 시행으로 인해 이전에는 개인정보의 보호가 일부 사업자에만 적용되던 것이 부동산 등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자영업자를 비롯해 동호회 운영자나 카드를 발급하는 음식점 등도 대상이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는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이메일 주소, 가족관계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또한 이 법의 시행으로 개인정보 처리시 많은 제약이 생기게 되었다. 예를 들면 특정 사이트를 가입해 해당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할때 수없이 눌러야만 했던 ‘동의’, 즉, 정보제공에 대한 동의를 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그에 대한 제공을 거부하면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었다.
즉, 이 ‘개인정보보호법’은 급변하는 IT세상에서 과거 네이트온의 대량해킹사건과 같은 개인정보유출사건 등으로 피해를 보는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개인정보보호법은 오히려 금융권에서는 되려 금융소비자의 목을 죄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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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0일 해당 법의 발효 이후, 보험회사들은 보상금 청구시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제공/조회 등이 [어려워짐]을 이유로 이에 대한 무작위적인 ‘동의’를 보험가입자에게 강권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당신의 개인신용정보를 우리가 마음대로 볼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면, 보험금을 내어 줄 수 없다.” 라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하여 보험가입자들의 불만이 폭주하여 금감원에 이에 대해 많은 민원이 몰렸는데, 담당자의 말은 더더욱 기가 찬다.
“아니 막말로 보험회사도 사실관계를 알아야 보상금을 지급할게 아니냐. 혹은 보험사기가 만연해 있는데 그런 청구들이 보험사기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될것이 아니냐..” (해당 민원을 넣었던 사람에게 들은 내용을 토시 하나 안틀리고 옮겼습니다)
보험회사나 금감원의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 이야기이나, 기실 그 안의 내용을 보면 아전인수식 해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보험계약은, 보험가입자와 보험회사간의 [계약]이다. 계약이란 상호간에 구속력있는 협정으로서 약정이라고도 일컫는다. 즉, 계약은 마쳤다면 정해진 대로 가는것이다. 보험가입자로서 계약상의 자신의 의무(보험료의 납입, 고지의무, 통지의무 등등)만 충실히 한다면, 약정되어진 내용에 해당하는(수많은 특약으로 구성된 위험보장) 권리(보상금을 받는 것)를 행사하는데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자신의 개인신용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는 위 계약에 전혀 언급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다. 즉, 신용정보 제공에 대한 ‘동의’가 보험계약에 있어서 보험가입자의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금감원 담당자가 말하는 ‘사실관계’란 보험계약을 한 모든 약정이 명시된 청약서와 증권, 약관으로 충분할뿐 그보다 더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월권이자 사생활침해라는 이야기이다.
보험사기의 우려가 있어 그 진위를 가려내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말도 정말로 금감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할말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보험사기가 의심이 된다면 그 진위를 가리는 주체는 보험회사이지 보험가입자가 아니다. 즉, 사기임을 입증하는 주체가 보험회사인데 그에 대한 정보제공및 동의를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 살인용의자라 할지라도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게 개인의 권리인데 ‘당신이 의심스러워 질지도 모르니 일단 당신의 모든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니?
과거 보험회사는 외부의 손해사정인을 고용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보험가입자에게 임의로 정보열람의 동의 및 인감대리를 받아 건강보험 공단 치료기록, 집과 직장 근처 반경 2Km내의 모든 병원의 의료기록을 샅샅이 찾아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주로 고지의무 위반등의 사유) 위와 같은 채무부존재의 소를 걸거나 보험금지급을 무한정 늦추는 방식으로 보상금을 감액합의하거나 아예 지급을 하지 않는 경우로 많은 원성을 하곤 하였다.
이러한 법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비단 보험업계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2009년 2월부터 시행되어온 자본시장 통합법은 기존의 개별적 법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로 인해 거의 모든 금융사간의 업무협조 및 자본시장과 관련된 모든 업종이 가능하도록 하고 이로 인해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들의 자유로운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IB)이 탄생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내었다. 그 중에는 개인 투자자를 역시 [보호]하기 위해 강화된 보호 조치도 여러개 만들어 졌는데,
결국, 늘어난 것은 펀드 하나를 가입하기 위해 써야 하는 수많은 서류뭉치들 뿐이다. 금융회사가 ‘법적으로’ 안전하기 위해서 마련한 깨알같은 글씨와 온갖 전문용어로 점철된,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 종이 뭉치들. 그리고 자필서명란. 동의. 동의. 동의. 무엇을 동의하는지도 잘 모르고 ‘여기 하셔야 하구요, 여기, 그리고 또 여기...’ 사인만 하는데도 10분은 우습게 넘어가기도 한다.
은행에 가서 통장 하나를 만들려고 해도 서명으로 동의해야 할 곳에 완벽한 설명을 들으려면 창구 하나에 거의 반나절은 앉아있어야 할 분량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동의’로 대체 투자자들이 얻어낸 [보호 장치]는 무엇이 있단 말인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미 전역으로 퍼질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맞고 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미 정치권의 반응에는 호의와 적대감이 교차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4500억 달러 규모의 일자리 창출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월스트리트 시위에 대해 "미국인들이 느끼는 좌절감의 표현"이라며 공감을 표시한 바 있다.
금융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금융회사도 사람과 사람간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그 필요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해서 그 필요성을 무기로 사람을 겁박하거나 몰아가선 안될것이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 인해 사람과 금융간의 주객전도가 이뤄진것이 오래지만 이것을 보편일반화 해선 안될것이다.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고 했다. 스스로 자신의 소중한 권리인 개인정보를 지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나의 정보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다. 개인정보 뿐 아니라 금융에 있어서 소비자로서 누려야할 정당한 권리행사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금융회사의 부도덕을 탓하기 앞서 스스로 개인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그 소중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