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작성자
손기혁
등록일
2011/11/21
조회수
7869

 

융통성 없이 자신이 세운 일방적인 제도, 주의 , 방침에 다른 사람들을 어거지로 끼워 맞추려는 아집, 편견, 횡포 등을 비유하는 관용구가 된다.

 

대한민국 금융 60년의 변화 속에서 금융은 <필요한 것>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바뀌었고, 금융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용할 수 없는 자격이 되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에 상당히 불편함을 초래하거나 아예 삶 자체의 영위가 불가능해 지는 경우에까지 이르렀다.

 

사람을 위해 존재했던 금융이 사람을 금융의 휘하에 넣어놓고 자신들의 잣대에 맞춰 순응케 하고 있다.

 

사람들 역시 이제 돈에 대해서만큼은 무서우리만치 냉정하며, 자기중심적이고, 투자라는 미명하에 다른이의 불행에 관심을 두지 않을 만큼 변해버렸다.

 

아폴로도스신화집에 나오는 다마스테스라는 연쇄 살인자가 있는데 그의 별명은 프로크루스테스. ‘늘이는 자, 두드려서 펴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해치는 방식 때문에 붙여진 별명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다가 자신의 쇠침대에 눕힌 뒤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톱으로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작으면 망치로 때려 억지로 침대길이에 맞춰 늘려 죽였기 때문이었다.

 

금융정체성을 가지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잘못된 자기 기준과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는 것.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놓이고 사정없이 톱질이나 망치질을 하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 확립이라 생각하는 건 엄청난 착각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바로 당신의 가정, 당신의 내면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누군가는 ‘투자’를 목적으로 돈을 빌리지만 다른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돈을 빌려야 한다. 아이러니한건 전자건 후자건 제3자의 입장에선 다 손가락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자산의 60%를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이를 ‘굉장히 도전적인 사람’으로 평가할 수도, 또는 ‘투기에 미쳐 너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수도 없이 아내 몰래 주식투자를 하는 남편들을 보아왔다. 반대로 남편 몰래 챙겨둔 비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아내도 숱하게 보아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투자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은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상대가)나를 이해해 주지 못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부동산, 특히 수도권에 집중된 부동산 시장의 거품에 대한 우려가 많다. (이는 상위 1%의 부자들 역시 똑같이 느끼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 부동산 거품의 문제는 그간 부정부패한 정부, 기득권층에 있다고 한다. 정말로 그럴까? 피땀흘려 모은 내집의 가격이 내려가는걸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대인배가 정말로 그렇게 많을까? 아니 가격이 그렇게 내려가는 것이 맞다면 당신은 피땀흘려 모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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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들의 논의는 사실 꺼리조차도 안되는 한심한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문제 혹은 필자의 답변 어느 쪽으로 자신의 생각이 기울었다고 한들 결국 또 다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또 다른 다리를 늘려 죽이거나 다리를 잘라 죽일 뿐이다.

 

금융정체성은 ‘이것은 옳아, 저것은 옳지 않아’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필요해, 저것은 필요없어’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올바른 금융정체성은 ‘이것도 옳지만 저것도 옳을 수 있겠다.’, ‘이건 지금 나한테 꼭 필요한 투자이지만 저것도 언젠가는 필요해 질지 몰라’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명보험은 사망보장(종신)이 강하고 손해보험은 의료비(실손)보장이 강하다. 그렇다면 모르고 종신보험을 가입한 사람은 잘못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앞으로 일어날 위험은 그 확률을 떠나 누구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ETF나 인덱스펀드가 그에 비해 수수료가 높은 액티브펀드에 비해 장기 투자하기 유리할까? 그렇지도 않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그 평균을 수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변동성에 사람의 생각이 개입된다면, 물론 그 평균마저 하회할지 모르지만 상회를 하더라도 더 크게 상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수료를 가지고 ‘투자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부자들이 더 큰 수수료를 물고서라도 랩어카운트에 일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플레이션 1000원의 가치변화 상승률 5%를 기준으로 30년 후에 천원의 가치는 겨우 215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연금 등의 미래지향적 상품들은 투자가치가 없을 거라고들 한다. 우리나라 금융의 역사는 고종 때 처음 세운 은행을 기점으로 따져봐도 백년이 겨우 넘는다. 흙으로 벽을 쌓고 짚으로 지붕을 올리던 시절에서 철근 콘크리트에 백층이 넘은 건물을 세우는 동안 지구 자체의 지각변동이 일어나 변화해온 것이 고작 백년이라는 시간인데, 미래의 30년을 단순한 물가상승률로 계산한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대비’를 투자가치라는 명목하에 결국 지금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한다는 것이 더 잘못된 계산 아닐까?

 

금융, 특히 금융상품에 대해 자신만의 침대의 크기를 재어 늘리거나 줄이게 되면 남는 것은 살이 썩고 피가 굳어 나는 악취뿐이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 그렇게 오염된 살점과 악취는 침대 자체를 녹슬게 하고 언젠가 한쪽 귀퉁이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한 침대는 자신의 발등을 찧고 그 상처로 살점과 악취들이 침입해 들어가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의 온몸을 썩히고 병들게 할 것이다.

 

보다 넓게 볼 혜안이 필요한 시기이다. 잘못된 금융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http://cafe.daum.net/woantjf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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