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드라마 [하얀거탑]을 시청하게 된 계기는 드라마보다는 한 블로거가 쓴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 분)에 대한 현실에서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 납득과 공감이 되지 않는 정의의 구현만을 외치는 최도영(이선균 분), 이윤진(송선미 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데서 비롯한 호기심이 원인이었습니다.
좋은 영화,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도 즐거운 유희 중 하나일 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평론가의 비평을 보고 나의 기준과 비교를 한다든지, 어떤 한 주제에 집착하여 그 관점에서 순리를 이해해 가는 과정도 상당히 재미있는 과정중의 하나입니다. ? 박찬호나 박지성의 출전경기가 국가대표 축구나 WBC등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재미를 가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
[주] 글을 읽기 전 도덕적, 윤리적인 선과악의 구도를 놓고 누가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며,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다소의 개인적 억측과 과장이 포함됨을 사전에 양해 구합니다.
[전체 줄거리]
명인대학 외과의로서 학계 최고의 실력파로 인정받고 있는 장준혁은 어려서 가난한 홀어머니의 슬하에 어렵게 의대를 졸업한 수재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반항심리일까, 전형적인 [자기애적 인격장애]의 증상을 보여주며, 대대로 의사집안 출신인 동기의사 최도영에게 의사로서의 직업적 소명감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을 품으면서도 막상 자신과 동일선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판단에서는 이를 배척하여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돈은 있으되 명예를 얻지 못한 장인을 얻어 그의 욕망을 대리총족시켜 주고 그와 더불어 안정적인 부를 보장받는다. 대학병원의 외과 과장 자리라는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를 얻기 위해 수년을 마음속으로는 이미 인정하지 않는 전 외과과장(이주완)의 밑에서 10년을 개처럼 봉사하고,
또한 소인배와 같은 질투, 밥그릇 보전을 위한 이기주의로 팽배한 이주완 과장의 배신으로 자신의 차기 과장승진이 어렵게 되자, 원래부터 이주완 과장과 한통속이었던 부원장을 장인과 장인이 돈으로 포섭한 동문회장(부원장을 지금의 부원장으로 당선시킨 인물)을 필두로 부원장마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결국 자신의 야망을 이루어 내게 된다.
이후 의사로서의 호기심과 명예상승의 호승심을 억제하지 못해 결국 큰 의료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역시나 [자기애적 인격장애]의 표본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유족에 대한 대응은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 현재까지의 줄거리이다...
의사가 가지는 소명의식에 대한 개인적 이데올로기의 충돌, 돈과 권력, 명예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인간군상의 여러 단면들도 이 드라마를 흥미롭게 끌고 가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제가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드라마 [하얀거탑]의 초점은 장준혁 vs 최도영이나, 의사 장준혁 vs 기타등등이 아니라 <장준혁이 지금의 장준혁이 되기까지 역할을 다해준 주변인물>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바로 제가 장준혁이라는 캐릭터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처음부터 짚어보겠습니다.
1. 장준혁에겐 장준혁이 ‘사회에 나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수 있게 한 어려운 시절이 존재했다.
편모 슬하에 가난하다는 핸디캡은 드라마적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동기유발요소는 찾을 수 없을 만큼의 환경적인 부분입니다. 70년대 개발 도상국의 한국을 이끌어 갔던 경영인들의 대부분이 ‘장남’이었다는 통계도 주목해 볼만한 것들입니다.
역으로 유추한다면, 성공을 위해선 [지독할 만큼의 나를 지탱하는 동기]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것들엔 무엇이 있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 알고 싶다는 무한한 호기심 등이 그에 견줄 동기가 될 것입니다.
나에겐 아직 부족한 성공을 위한 동기.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장준혁이 저는 부럽습니다.
2. 장준혁에겐 장준혁이 가지지 못한 경험을 소유한 장인, 사랑하진 않으나 그를 대신해 궂은 일을 도맡아 책임질 줄 아는 아내가 있었다. 그를 위해선 목숨도 버릴 충직한 부하들이 있었다.
인생에 있어서 키맨(Key-Man)은 승진, 성공, 성취 등 어떤 요소나 환경적 변화에 대해서도 보다 더 능동적이고 쉬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소입니다. 장준혁은 사랑하지도 않는 아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홀어머니를 서울로 모시지 못했고, 장인이 소개해준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을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용하게 됩니다. 인생의 라이벌 최도영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습니다. 부원장에게는 더 심한 굴욕을 몸소 이행합니다. 부하들을 힘으로 누를 때를 알고 풀어 주어야 할 때를 명확히 짚어냅니다.
“내겐 왜 그런 장인이 없는가?”
“내 아내는 왜 저런 내조를 해주질 못할까?”
“내 마음의 안식을 달래줄 장준혁의 정부 같은 여인은 없을까?”
등을 꿈꾸고 투덜댈 것이라면, 그만큼의 대가는 자신이 얼마나 치르고 있는지를 돌아보길 권해봅니다.
키맨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그러한 <소유의 욕구>를 달성하려면 적어도 나부터 그러한 키맨이 될 자질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장준혁의 장인처럼 돈이 많아도 될 것이고, 인품이나 덕망 등 외적인 요소로도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을 갖출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입이 있고 손이 있고 뇌가 있기에 불평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것은 자유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된 건 OOO 때문이야~’
요새 참 많이 듣는 말입니다. 일단은 우리 한번 거울을 봅시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Give & Take 일 뿐입니다.
그리고 성공에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과 여건을 갖추었음에도 그렇게 되지 못함에 비난하고 자조하기 보다, 비겁하고 음흉하지만 다른 길을 기꺼이 모색하는 장준혁을 저는 존경합니다.
3. 장준혁에겐 누구도 범접 못할 야망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할 자질이 있었고 노력이 뒤따랐다.
드라마적 요소를 위해 캐릭터를 정신병적 증상의 형태로 몰아가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대중에게 많은 호응과 동의, 무언의 동질감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이 사회가 그러한 정신병적 열망을 부추기고 그것을 당연시 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의료사고의 경중이 아니고, 사과 박스를 건넬 정도의 인사치레가 아니고, 무엇보다 성공에 대한 야망의 발로가 뚜렷한 [자기애적 인격장애]라는 허울만 벗겨낸다면,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상은 결코 손가락질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성공하는 삶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Boys Be Ambitious !! “
어렸을 때 전과나 참고서에 참 많이 나왔던 구절입니다.
성공을 위해선 야망이 필요합니다. 야망이란 이루고자 하는 열망, 곧 목표이자 꿈입니다.
지금에 와서 이 회사의 CEO가 되겠다는 거창한 열망까진 필요치 않겠습니다만, 내 아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것도 좋은 야망입니다. 직장에서 인정받겠다는 것도, 많은 돈을 벌겠다는 것도, 원하는 공부 끝까지 끝마쳐 보겠다는 것도 훌륭한 야망입니다. 그러한 야망을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 가져야 합니다.
가끔씩 그러한 열망이 지나쳐 일종의 <장준혁化>된 사람들이 위와 같은 권력의 똬리를 틀고 있거나, 사교육 열풍이 불거나,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체를 평가할 근원적 문제라기 보다는 부작용입니다. 부작용은 충분히 예상되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원래의 특별한 효능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장준혁의 야망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많은 다른 분들께도 그러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꿈꾸는 것은 무엇입니까?
직장에서의 승진, 많은 부의 축적. 훌륭한 자녀 교육, 가족 모두의 건강, 언제나 웃을 수 있는 삶...... 혹은 로또? ^^
이러한 거창하거나 혹은 소박한 삶의 꿈들은 곧 야망이자 열정입니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선 그렇습니다. 그리고 의사 장준혁은 그것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노력입니다. (로또는 빼구요 ^^)
장준혁을 사랑합시다. 존경합시다. 그리고 그를 본받읍시다. 단, 미치지만 말자구요.
주) 자기애적 인격장애란?
- 자기애적 인격장애에서는 자신의 재능, 성취도, 중요성 또는 특출성에 대한 과대적 느낌을 가지고 있어 타인의 비판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자기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특별대우를 기대한다. 자존심이 불안정하며 남들이 자기를 얼마나 좋게 보고 있는지에 항상 집착되어 있고 타인으로부터 계속적인 관심과 칭찬을 요구한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분노와 패배감, 열등감, 모욕감을 느끼고 우울한 기분에 빠져든다.
이들은 주로 연극, 예술, 운동에 소질이 있어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전문직업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재능에 집착하는 것만큼 스스로 열등감, 천박감 또는 무가치감으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 자기능력에 대해서 비현실적으로 평가하여 지나친 재물, 권력, 아름다움 또는 이상적 사랑을 원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기도 하지만 더욱 커다란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다고 실망하기도 한다.
이들은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자 끊임없이 애를 쓰며 내부의 충실보다는 표면에 나타나는 모습을 더 중요시한다. 친구를 가까이 사귀는데는 인색하지 않지만 멋진 사람들 틈에 어울리기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