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통계 법칙에도 예외는 있다

작성자
김중근
등록일
2008/01/14
조회수
4297

대학 다니던 시절,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소개팅이라는 것을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생전 서로 처음 만난 이성인지라 만남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통 화제나 관심사도 없으니 답답한 침묵만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몇 번의 소개팅 경험이 쌓이면서 제법 말솜씨도 늘고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비법도 터득할 수 있었다.

 

 

당시 필자가 즐겨 써먹던 수법은 불쑥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처음 만난 터에 생일을 왜 묻는지 상대방 여학생은 의아해하면서도 “4월15일이요” 하는 식으로 대답한다. 이때 전략은 이렇다. 심각한 얼굴로 “이상하다……, 하긴 그렇지 뭐,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라고 혼잣말인 척하면서도 상대방이 들으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생일을 일러주었더니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궁금증이 커지는 찰나, 때를 놓치지 않고 이어지는 설명! “이상합니다. 생일이 4월이라고 하셨는데, 통계적으로 미인들은 다 겨울에 태어나거든요……. 물론 통계 법칙에도 예외는 있는 법이니까요.”

 

 

자기 보고 미인이라는데 싫어할 여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면전에다 대놓고 “미인이십니다”라고 말하면 자칫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슬쩍 돌려서 말하면 아무리 콧대 높은 여자도 웃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적절한 표현에 담아 전달하라! 이것이 핵심이다.

 

 

필자는 은행에서 근무할 당시 많은 기업체 고객들을 상대했다. 아무래도 필자가 외환을 전문으로 다루는 딜러이다보니 정보나 예측력이 자기네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환율 전망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묻곤 했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기 전에 전망을 묻는 사람들과 1분만 대화하면, 그 사람이 내심 환율이 오르기를 바라는지 내리기를 바라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기업마다 수출을 위주로 하는 기업, 수입을 위주로 하는 기업이 다르고, 각각의 입장에 따라 환율에 대한 ‘희망’이 상이하기에 이들은 은연중 자신들의 기대를 내비치는 것이다.

 

 

“앞으로 달러 환율이 오르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사람은 분명히 달러를 잔뜩 쥐고 있으면서 환율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사람이고, “국제수지가 흑자라던데……, 환율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묻는 사람은 틀림없이 수입대금 결제를 위해 달러 값이 내리기만 학수고대하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물론 필자가 은행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낙후되어서 예측이든 뭐든 모두 엉망이었고,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여하간 냉정히 말하자면 필자에게 환율 전망을 묻는 사람들은, 정확한 필자의 견해가 아니라, 그들이 정작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듣고자 한 것이다.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이럴 때 그들이 원하는 ‘정답’을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 기업체로부터 많은 외환거래를 손쉽게 따낼 수 있었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필자가 예측한 방향과 실제 환율이 정반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그건 필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다. 뭔가 정책이 잘못된 것이거나 돌발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지 예측이 틀린 게 아니라고 말하면 이미 ‘듣고 싶은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모두 수긍하고 넘어갔다. 예측이 틀렸다고 나중에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 기상청이 예보가 틀린다는 이유로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비가 온다더니 해가 쨍쨍 나질 않나, 그러다가 비가 ‘조금’ 내리겠다고 예보하면 엄청난 ‘폭우’가 내려 체면을 깎곤 한다. 이는 불행하게도 기상청이 내놓는 일기예보에는 모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증권사들이 내놓는 주가 전망은 일기예보와 사정이 다르다. 주식시장에는 투자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누구나 알고 있다.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7일만에 끝내는 실전매매> 中 칼럼 '김중근의 시장 천천히 걷기' 발췌

http://book.moneta.co.kr/html/book7trad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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