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386 세대는 흑백 TV로 방영되던 ‘우주소년 아톰’이란 만화영화를 보며 자랐습니다.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지닌 아톰이 거대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로봇들을 물리치는 것을 보며 통쾌해하던 기억이 공유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톰은 1960년대 데즈카 오사무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의 만화영화로 전쟁의 피폐함을 겪은 일본의 어린이들에게 던지는 미래를 향한 강한 메시지였습니다. 비록 서구 열강에 비해 작은 나라이지만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작은 것으로 히트를 치며 하이테크 산업의 강자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워크맨이란 것은 제품명인데도 소형 카세트레코더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일본의 기술력은 탁월했고 특히 작은 것에서 강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본 여행을 가면 의례히 워크맨이나 코끼리 밥통을 사와야 되는 것으로 여겼을 정도이구요.
이처럼 플라자 합의에 의해 엔화가 수직 상승을 하여 일본의 제품 가격이 3배 가량 비싸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술력이 탁월했기에 잘 팔렸습니다. 나중에는 이 환율이 문제를 일으키지만 한 동안은 끄덕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말이 씨가 된다' 것이 새삼스레 느껴집니다.
얼마나 상승을 하였기에 버블이라고 할까?
버블 형성 시기라 할 수 있는 1985∼1989년간 일본 내 연평균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4.5% 인 반면 주가와 지가는 같은 기간 각각 26.4%와 24.4%의 고성장을 보였습니다. 주가가 1989년 12월 말 최고 38,915 (닛케이 평균주가)까지 치솟았습니다.
정상적인 상승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상승률만을 가지고 버블을 논한다면 우를 범하기 것이기에 적정 상승률을 이해하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이상적인 사회란 경제 성장률과 동일한 임금 및 실물 자산의 상승률을 보여야 합니다.
예로 2억 원짜리의 집을 사려는데 1억 5천만 원 밖에 없다면 모자라는 5천만 원을 채우기 위해 저축을 하거나 대출을 받게 되죠.
사회가 안정적이라면 일년에 천만 원씩 5년 동안 모아 모자라는 금액을 채울 수 있습니다. 물가가 상승을 해 주택의 가격이 오른다 해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 임금이 올라준다면 오름세를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 상승률보다 실물 자산의 상승률이 높으면 저축보다는 대출을 사용하는 편이 현명하죠. 아무리 모아도 늘 부족하기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매입을 한다면 대출 금액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므로 실물 자산이 오르는 만큼 이익을 보게 될 수 있으니까요.
상황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다소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주가와 지가가 대략 6 배 전후한 과도한 증가세를 보였으니 버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리 비이성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었을까?
환율을 조정하였는데도 별로 수출 산업의 타격을 받지 않아 미국을 누른다는 자신감이 생겨난 것이 버블의 주요 원인이라 했습니다만 어느 하나의 문제가 표면에 돌출되기 위해서는 많은 현상들이 결부되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배후로 일본의 금융 산업이 지목됩니다.
일본은 1970년대 후반부터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 골자는 직접금융과 간접금융시장 간의 자유화, 대형 및 소형예금의 금리 자유화로 이것이 버블경제 발생의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원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일본은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저성장기에 돌입하였고 이에 따라 경기부양의 필요성 대두되었습니다. 경기 부양은 정부의 재정 지출이 확대하는 것이므로 사회간접자본 신설 등으로 인해 일본 정부는 당연히 재정적자가 증가를 하였겠죠.
재정적자를 메우는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세수를 확대하고 국채를 발행하는 것입니다. 국채란 정부가 발행하는 안정성이 높은 채권으로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보장이 됩니다. 정부가 돈이 필요하다면 국채의 금리를 높여 투자 자금을 유인을 할 것이고 재정 흑자가 확대되어 돈이 남아돈다면 국채 금리를 낮추게 됩니다.
일본 정부는 돈이 필요해 국채를 발행하였고 이것들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1977년 국채유통시장을 허용 하였습니다. 또한 국채금리를 비롯해 콜금리, 어음 할인율, 선물시장 금리 등을 1970년대 말까지 자유화 시켰습니다. 국채금리가 점차 인상되자 가계의 잉여 자금 자금들이 빠르게 국채시장으로 빨려 들어갔고 이것은 10년간의 불황을 겪으면서 부동산이 폭락을 하였는데도 현금을 가진 부자들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든 금리는 1980년대 말까지 자유화 되었지만 소형 예금금리는 1993년까지 저금리에 묶여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장기적인 저금리는 투기를 양산시키는 악마적인 속성을 따라 점차 실물 자산에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일본의 기업들은 하이테크 기술을 통해 엄청난 흑자를 이루어 냈기에 주식 시장이 팽창을 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주가는 폭등을 했고 주식에 투자를 한 사람들은 엄청난 차익을 얻을 수 있었겠죠. 이런 호황세를 이용해 일본의 기업들은 주식의 발행 규모를 늘려 은행의 대출을 줄이고 직접금융을 통해 자본금을 늘리는 빈도가 높아졌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1998 년~2000 년에 주식 시장이 호황을 보이자 기업들이 주식 발행량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신규 상장 업체들도 많았던 당시의 상황을 연상하시면 이해가 용이하실 겁니다.
버블 형성 이전인 1980~1984 년까지는 일본 기업들의 주식발행에 의한 자금 조달은 평균 3.9 % 였는데 반해 버블기였던 1985년~1989 년까지는 40% 가 넘습니다. CP나 주식 등으로의 자금 조달이 용이해진 일본의 대기업들은 은행 이탈을 가속화하였구요.
이에 따라 일본 은행들은 살아남기 위해 高수익의 융자처를 찾아 나섰습니다. 은행업의 본래 목적과 기능은 가계에서 자금들을 모아들여 기업 등에 대출을 해주는 중간자입니다. 일본의 은행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융자대상을 종래의 제조업종의 대기업에서 부동산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부동산 담보 대출을 늘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부동산 투기는 개인이 아닌 기업들이 주체였다는 것이 좀 이해가 가시죠.
반면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본과는 달리 일반 가계 대출을 확대를 해 현재 가계 대출이 문제시 되는 측면이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에 이어 씁니다.
독감 백신은 한 달 정도가 지나야 면역력이 생기니 어린 자녀들에게 접종을 안하신 분들은 서두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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