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술 권하는 사회

작성자
강준현
등록일
2014/02/26
조회수
17258

 현진건이 쓴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이 있지요. 그 내용 중에,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아내가 핀잔을 주자 남편이 이렇게 대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내가 설명해 드리지. 자세히 들어요.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알았소?” 1921년에 발표된 소설이니 일본 제국주의의 폭정과 억압을 떠올리면 그 사회가 주인공에게 술을 권한다는 말에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90여 년이 지난 2014년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가요?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국가부채와 가계부채가 모두 1,000조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빚이 늘어나는 건 국가도 가계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지만 특히 가계부채가 10년 전에 500조원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 두 배나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증가속도가 요즘 통신사들 광고에 빗대자면 LTE-A급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부동산은 침체기고, 금리는 낮고, 주식도 별 볼일 없고, 국민소득도 답보상태고, 체감물가는 높고, 체감소득은 줄고… 뭐 하나 국민들 마음에 위안거리가 되는 게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빚은 시나브로 늘어났고 이젠 급기야 1,000조원을 넘게 된 모양입니다. 1,000조원이 감이 잘 안 와서 그렇지 국민 1인당으로 치면 2,000만원씩 빚이 있는 셈입니다. 대단히 부담스런 액수지요. 근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왜냐면 국가부채도 결국은 국민이 갚아야 할 빚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본 영화에서 주인공이 법정에서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치는 대사를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고, 국가가 국민을 무시하던 시대에 국민이 국가에게 날리는 최고로 시원한 일갈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곧 국민이란 건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요. 근데 그렇게 따지면 국민 1인당 빚은 4,000만원이 됩니다. 필자처럼 4인 가족인 경우엔 가구당 1억 6천만원이나 되는 큰 빚입니다. 이 많은 걸 어떻게 갚을지, 갚을 수 있긴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단순히 인구수로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채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어쩌면 단군 이래로, 우리는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에듀푸어, 카푸어 등 순전히 가난뱅이들 투성입니다. 누가 이렇게 많은 가난뱅이들을 양산했을까요? 정부의 잘못인가요? 국민 스스로의 잘못인가요? 이건 정부만의 책임도, 국민만의 책임도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국민의 의식수준이 부합된 콜라보레이션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가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정부와 기업, 가계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합당한 해결방안에 대해 토론해야 하고, 특히 금융기관들과 정부당국은 정신차려야 합니다. 금융기관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대출을 권장하기보다는 고객의 금융정보를 더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배워야 하고, 정부당국자는 금융정보유출사고가 났는데 국민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따위의 뉘앙스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국민들은 분통이 터진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아야 합니다.

 

작금의 상황과 관련해서 최근에 필자가 빼놓지 않는 소재가 하나 있는데 바로 대부업체들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놀라운 걸 넘어서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들의 높은 이자율과 다소 무리한 채권추심방식이 놀랍거나 두려운 게 아니고, 그들이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놀랍고 두렵습니다. 대부업체들은 광고에서 채소나 견과류를 의인화한 캐릭터로 친근함을 주기도 하고, 따라 하기 쉬운 멜로디의 CM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기업 이미지 광고를 통한 감성터치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30일 무이자, 금리인하, 전화나 인터넷으로 빠르게, 무방문, 무서류, 무심사로 편리하게 등을 무기로 삼아 TV, 전단지, 인터넷을 망라한 전방위에서 광고융단폭격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업계 1위 업체의 경우 케이블 TV에서 하루 평균 400회 이상의 광고를 하고 있다니까 융단폭격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부업체가 등록된 것만 12,000개 정도이고 미등록업체까지 합치면 약 3~5만개쯤 된다니 많아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서울의 노선버스들은 앞문이 열릴 때 대출광고를 주로 하는 저축은행의 광고판이 같이 열리던데, 버스중앙차로에 10대쯤 되는 버스가 그 광고판을 일렬로 가지런히 펼쳐놓은 모습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여기에다 최근에 대부업체들이 부실저축은행들을 인수하고 있고, 대부업계 자금의 절반 이상은 일본계 자금이라는 공공연한 비밀까지 머리 속에 떠오르면 그 씁쓸함은 더욱 짙어만 갑니다. ‘술 권하는 사회’를 쓸 당시 현진건은 21살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을까요? 어쩌면 ‘빚 권하는 사회’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차제에 대부업체들에게 몇 가지 고합니다.

 

첫째, 광고에서 감성팔이 하지 마세요. 특히, 남편 모르게 하는 대출, 친구론 가족으론 안되니까 바로 빌려주는 대출, 소개팅에 입고 나갈 옷이 없어서 받는 대출 등의 설정은 역겹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 가족 몰래 하는 대출이, 소개팅에 입고 나갈 옷을 사기 위한 대출이 합리화되나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감성을 덧입혀도 당신들이 여전히 엄청나게 비싼 상품을 팔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둘째, 아무한테나 대출하지 마세요.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광고하던데, 그건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쉽고 편하니까 ‘누구나에게’ 필요한 서비스라는 뉘앙스는 주지 마세요. 대출받을 때 정말 꼭 필요하시냐고 물어보기라도 합니까? 대출받을 땐 쉬워도 갚지 않을 땐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라도 해주나요? 차라리 대출받을 때 까다롭게 굴고 갚을 때 따뜻하게 대하세요. 그게 훨씬 낫습니다. 당신들의 대출상품은 누군가에겐 약(藥)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약보다는 독(毒)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셋째, 이자율 내리세요. 예전에 비해서 이자율이 많이 내려온 거 압니다. 당신들이 제도권 금융기관에 비해 자금조달비용이 훨씬 높고, 채권회수율이 훨씬 낮은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걸 다 감안해도 39%는 너무 높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연 30%짜리 예금상품을 같이 취급한다면 연 39%짜리 대출상품도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자율 낮추세요. 방법이 있습니다. 광고를 줄이면 됩니다. 하루에 400번 하던 거 10번만 하세요. 그 광고비용만 줄여도 이자율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습니다. 정부도 광고규제하기 바랍니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대부업체 광고들, 귀 아프고 눈 따갑고 지겹습니다. 이제는 광고라기보다 공해라고 느껴집니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이 대부업체들 광고 CM을 따라부르는 꼬락서니는 정말로 보기 싫습니다.

 

이런 우울한 얘기들을 계속 하다 보니까 불현듯 술 생각이 나네요. 2014년 현재는 빚 권하는 사회인 동시에,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아마도 필자는 오늘 저녁에 친구 한 명을 불러내어 술을 권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 말이죠…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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