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아는 사람 중에 자기처럼 지지리도 복도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푸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는 누구처럼 능력 있고 돈 많은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했고, 천재처럼 뛰어난 머리도 없는 탓에 평생을 요 모양 요 꼴로 살 수 밖에 없다고도 했다. 조금만 더 나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세상을 바꿀만한 큰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텐데 그게 ‘한(恨)’이라고도 읊조렸다. 필자는 매번 그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하고 괴롭다. 왜냐하면 이른바 그가 원하는 돈 많은 아버지에 끝내주는 머리를 가졌어도 그의 삶이 성공적일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더 능력 있는 아버지와 더 머리 좋은 주위 사람을 보며 끝없는 패배감을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사상 초유의 여자 3관왕이 등장했다. 100m와 200m, 그리고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그 여성의 이름은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이다.

 

           [출처 : ADIDAS 프로모션 포스터 中]

 

1960년 6월 23일, 2kg의 허약한 윌마가 테네시 주 베들레헴 거리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을 때, 그녀에게는 이미 19명의 언니, 오빠가 있었다. 지독히도 가난한 가정의 20번째로 태어난 이 여자 아이는 4살이 되던 해에 전 미국을 휩쓸었던 소아마비라는 질병을 피해가지 못했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다리가 굽은 채 마비되어 버렸다. 그녀의 의사는 그녀가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고,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를 ‘병신’이자 ‘신의 저주를 받은 아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녀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큰 뜻을 품기 위한 계기로 생각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장애는 그녀가 더 치열하 싸워야 할 대상일 뿐, 그녀의 전진을 가로막는 넘지 못할 벽은 아니었던 셈이다.

 

‘여성’이라는 존재 역시 그녀의 성취를 가로막는 장애처럼 보였다. 윌마는 그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 적이 있다.

 

“당시 남부 지방에서는 ‘여자들은 그런 일을 하면 안 돼’ 라는 구시대적인 사고 방식이 지배적이었죠. ‘스포츠를 하면 근육이 생기고 남자처럼 보인다’ 라던지 ‘여자가 너무 뛰어다니면 아이를 가질 수 없어’ 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얘기에 굴복하지 않았고, 스포츠 계의 ‘최초 여성’이라는 값진 의미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승리자가 되었다.

 

그녀의 세 번째 장애는 ‘흑인’이라는 인종 문제였다. 어쩌면 그녀가 극복해야 할 가장 어렵고 커다란 장애였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미국 남부사회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존재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지원은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윌마와 그녀의 동료들은 9인승 왜건을 타고 이동해야 했고, 식당 출입 역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장애 앞에 쓰러지지 않았고 굴복하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처참한 운명이라며 저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윌마는 당당하게 맞섰고 극복해 냈다.

 

치명적일 수 있는 장애를 하나도 아닌 세 개나 가졌던 여성 ‘윌마 루돌프’는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을 보기 좋게 극복해 내고 신화가 되었다. 어쩌면 그녀의 이야기는 절망을 도약판으로 삼아 그 절망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이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도 않았다. 혹 지금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환경이나 어려움에 분노하고 좌절할만한 상황이라면 ‘흑인’이었고, ‘여자’였으며, ‘장애’를 가지고도 찬란한 승리를 거머쥔 윌마 루돌프를 기억하길 바란다. 그녀의 묘비명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칼럼을 마무리한다.

 

“내가 만약 훌륭한 육상선수, 윌마 루돌프라고만 기억된다면 나는 매우 슬플 것이다. 나에게 있어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유산은 그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 1940.6.23~1994.11.12

- 1960년 <AP 통신>에 의해 ‘올해의 여자 선수’ 선정

- 1960년 로마 올림픽의 트랙과 필드 부문(100,200,400m)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여성 미국인

- 1962년 미국 최고 여자 운동 선수로 ‘베이브 디드릭슨 상’ 수여

- 1963년 올림픽 명예의 전당 헌정